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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도래할 때까지) 벧후2장4-8절 주전20230903

by 인천열린 2023. 9. 2.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도래할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벧후2장4-8절 주전20230903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심판이 실재로 미래에 올 것입니다. 그러하면 그리스도인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과거에 심판하신 것과 미래에 다시 심판하실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3가지 예를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심판을 입증하는 예를 창세기의 순서를 따라 확신시켜 주려고 합니다. ❶천사들의 이야기(4절)와 ❷홍수 이야기(5절-창6:5-9:17) ❸소돔과 고모라 (6절-창18:16-19) 이야기입니다.
 
 

1. 타락한 천사까지도 심판하시는 하나님(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4)
 

1.1. 타락한 천사 이야기

 
첫 번째는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세계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을 얼굴을 맞대고 섬겼으나 천사들이 하나님을 반역했던 죄악을 예로 듭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놀라운 존재들의 세계에 대해 흥미롭지만, 아주 부분적으로만 얼핏 볼 수 있게 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지를 증언합니다. 예수님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사탄과 그 무리가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했음을”(계12:7-9) 보았던 환상을 말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여기서 사단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총괄적으로 말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우리가 어떻게 추정할지 모르지만) 그냥 그들이 “범죄 했다.”라고만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화를 연결하여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2. 2 가지 메시지 
베드로는 다음 예를 사용해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2.1 첫째 어느 누구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까지도 용서하지 않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 날에 대한 우리를 순진하고 원시적인 믿음이라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에게 저항하는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럽고 능력 있는 존재일지라도 그분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2.2. 둘째 심판은 비록 지연되었지만 여전히 실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과거에 “범죄 했으나”, 미래의 “심판을 위해” 현재는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4절) 아무리 대단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한 존재들은 여전히 최종적이고 피할 수 없는 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현재 심판이 없는 세상을 악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데서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무서운 형벌 아래 놓여서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토록 가까이서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태어나면서부도 죄악의 덩어리로 태어난 이 인간이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운영하는 방식에 반역을 하자마자 최종적인 형벌을 내리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로 가둬버린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형벌로 가두신 것입니다. 반역하는 천사들에게 무서운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예외가 없이 이뤄질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에서의 핵심부에는 반역하는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사이에 이 천사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신중하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요한 사도의 증언에 따르면 타락한 천사는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놓인 것입니다.(눅10:18, 계12:7-9)  
   

2.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심과 구원하심 (벧후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2:5)
   
2.1. 세상을 심판하심과 노아

하나님이 “천사들까지도 용서하지 아니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반역도 역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유발했으며,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창6:6)고 모세는 증언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천사 간에는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라고 결심하시지만, 완전히 다 제거한다는 것은 생각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회가 부패하여 포악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라고 말합니다. 노아는 분명히 수동적인 신자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심판을 (뼈아픈 일이지만)기대하고, 그 심판을 피하려고 미리 대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창세기에서 노아는 칭찬을 받습니다.


   
2.2. 노아는 무엇을 증언하였는가?
  그에 대한 히브리서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히11:7) 노아는 방주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의를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그는 오직 방주를 만든 것으로만 이름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이렇게 “의를 전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성경학자는 말합니다. “어떻게 그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멸망을 당할 것을 보면서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분명 사람들은 방주라는 이상한 구조물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저게 뭐지?” 라고 말입니다. 그는 그 질문들에 대답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증언은 “구약에 기록되지 않은 그의 전파활동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그의 생활방식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죄를 정죄하고 의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충분한 증언이라 보여 집니다.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노아를 선지자로 언급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광야에 배를 건설하는 것만으로도,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를 조롱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믿음을 그 방주로 나타내어 보여 준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그를 믿고 그에게 합류한 일곱 식구"를 구원하는 믿음에도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2.3. 베드로의 메시지 2가지


  베드로는 여기서 두 가지를 더 주장합니다.


2.1. 첫째, 죄안 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메시지를 믿은 사람들을 “보존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죄악 된 세상에 대한 불가피한 심판을 말하는 베드로의 메시지는 구제할 수 없는, 아주 우울하고 비관주의적인 메시지를 던지듯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심판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주적 심판의 날에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일곱”은 노아를 믿었던,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믿는 적은 수의 사람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거짓 선생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짓 선생들의 죄악이 마치 오랫동안 성공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시대에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2. 둘째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의”를 제시하면서 오랫동안 지루하고 피곤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산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 바보를 비웃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전할 때마다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힘들거나 심지어 어리석다고 생각해서 미혹 당하고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 참고, 노아를 본받아 이 날들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 선생들과는 달리 “의”를 제시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노아 가족 7명이 그랬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그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노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고 증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실로 대단히 힘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과 적용

  하나님의 심판의 날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베드로는 악한 세상에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 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거짓 선생들까지도 교회를 괴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저들을 방관하시고 계시는가?”라는 의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증언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은 천사들에게까지도 가해져야만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소수의 사람, 단 8명을 구원하신 과정을 보여주신 노아의 방주 사건은 거기에 담긴 의미가 깊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에 이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약속과 의를 증언함으로써 우리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삶과 그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의를 나타내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노아의 시대보다 덜한 악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아와 같이 고통스러운 불신을 받을지라도 온 삶으로 증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