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싸우는 목자, 예수 그리스도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1. 에돔에서 오는 이는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사63:1-6)
들어가는 말
시인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는지를 고백합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의 필수적인 장비입니다. "지팡이"(미쉬에네트)는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장비였다면, 그에 비해 "막대기"(쉐베트)는 목자가 지니고 다니는 일종의 무기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군사들도 소지하고 있는 무기입니다.(삼하23:21) 맹수들을 방어하거나 공격하여 양을 보호하는 것으로 목자들에게는 필수적인 도구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❶시편 23편의 "목자의 막대기"로 맹수들을 물리치던 목자의 싸움으로 비유된 말씀에 비춰서 ❷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던 역사적인 기록들과 ❸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서 우리의 메시아는 도대체 어떻게 대적들과 싸우시는지를 살펴봅니다.
1. 양을 위한 목자의 막대기
1.1. 목자의 막대기
목자는 필수적으로 몸에 지녀야 할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습니다. 둘 다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지팡이가 곁길로 나가는 양을 다시금 바른 길로 이끌어 들이기 위하여 사용된 도구였다면, "막대기"는 끝이 날카로운 흉기요 무기였습니다. 맹수들을 무기로 물리치는 무기였습니다. 그래서 목자의 사명은 단순히 양떼들에게 꼴을 먹이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는 것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볼 때 목자는 일종의 용맹한 군사와 같았습니다. 양떼를 해치기 위해 공격하는 적들을 퇴치시키기 위해 뛰어난 싸움의 능력과 전투적인 용기를 소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사랑하는 마음과 대적을 물리칠 능력을 겸비해야 했던 것입니다.
1.2. 역사상 우리를 위해 싸우셨던 여호와
역사적으로 볼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백성 삼으시고, 스스로 그 백성을 위해싸우셨습니다. 양떼를 위하여 싸우는 목자들과 같이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여호와는 구약성경에 줄기차게 계시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용사를 자처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의 양떼를 보호하시기 위해 우리의 대적들을 당신의 대적으로 여기시고, 오늘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만 보호 받으며,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이 비밀을 소유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의 기도 가운데 자주 언급된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였습니다. 자신을 위해 싸워달라는 애원이요, 처절한 탄원이었습니다. 시편35편1-5절입니다.
“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3.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4.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5.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이 얼마나 놀라운 분입니까? 인생은 쉼 없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온갖 위험과 절망적인 상황들, 우리의 대적이 단 한 순간도 우리를 노리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마귀는 한 순간도 쉬지 않습니다. 마귀는 잠자는 일도 없습니다. 벧전5;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느 사자 같이 두루 다시며 삼킬 자를 찾나니”
보이지도 않는 질병의 원인균들과 커다란 재난과 사건 사고, 그리고 악인들이 날뛰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매 순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려과 지혜로 우리의 대적들과 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1.3. 애굽의 군사를 물리치신 여호와
홍해를 건널 때였습니다. 애굽의 최강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14:13-14절입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최강 군사력에 모두가 죽임을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위하여 친히 군사와 같이 싸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성경은 지속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왜 이토록 긴 세월 동안 싸우셨을까요?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구원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우리가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❶그 싸움이 당신의 공의의 분노가 얼마나 강력하며, ❷택하신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기까지 하셨다는 사실을 어는 것보다 더 복된 지식은 없습니다. 이 깨달음과 바꿀만한 가치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의 보호아래 들어오십시오! 온갖 위험한 일들과 우리의 영혼과 몸을 치려는 대적들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이 진흙탕 같은 더러운 전쟁터라 할 수 있는 악한 이 세상에 친히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싸우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2. 우리를 위해 싸워 승리하신 메시아
2.1. 전장에서 돌아오시는 개선장군, 우리의 메시아
유대의 회복을 외친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이는 최종적으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성취하실 일이었습니다. 그 메시아는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고, 그 전장에서 승리하여 돌아오실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 중에서도 매우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 이사야 63장1-6절에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승리하실 메시아입니다. 전쟁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의 모습은 장차 오실 메시아입니다. 선혈이 낭자한 갑옷을 입은 채로 돌아오시는 장군의 모습니다. 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을 통해서 성취하신 구원입니까? 그분의 칼에 대적의 피가 흥건합니다. 뚝뚝 떨어지는 대적의 살점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주저 받으신 피 흘림은 우리를 구원하신 완전한 구원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이루실 구원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사63:1-6절입니다.
“1. 에돔에서 오는 이는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2.2. 에돔과 보스라를 멸망시키시는 메시아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북방의 강대국에 의하여 철저히 짓밟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예루살렘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런 비참한 유대나라와 예루살렘에 남쪽에 있는 에돔 사람들과 보스라의 시민들이 비참한 때에 쳐들어와 모든 것을 갈취해 갔습니다. 불 난 집에 도둑이 든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 영원히 원수로 여겨지는 자들이 에돔과 보스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예루살렘에 들어와 땅을 차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게, 얼마나 치욕적으로 짓밟혔는지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마귀는 영원한 대적이라는 사실을 염두 해 두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그 당시에 유대와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메시아가 오시리라. 그가 오시면 너희의 철천지원수들인 저 에돔과 보스라에서 너희의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어 주리라. 내가 보낼 메시아가 너희들의 영원한 장군이 되어 그들을 철저히 멸망시키리라. 이렇게 예언하신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예언의 말씀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영혼과 몸을 어떤 싸움으로 구원 하실지 것을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승리하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 승리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차원에서 택하신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약속된 구원"은 우리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루실 구원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인류 구원이었습니다. 단지 유대나라의 회복의 차원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메시아의 영광스런 개선"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어떤 면에서는 애돔 족속에 대한 다윗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암시하기도 합니다.(시60편, 삼하8:13-14)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가 인류 구원성취의 예표였습니다.
2.3. 그리스도의 영적 승리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원수들을 지배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진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요한계시록19:13절입니다.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라 칭하더라.”(계19:13)
이 세상의 권세 자들과 왕들의 정복자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런 자들을 늑탈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승리에 대한 설명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 에돔에서 오는 이는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1-2)
한 가지 질문이 이 정복자에게 던져집니다.(1,2절) 교회의 이름으로 질문하는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혈투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는 위대한 영웅을 바라보면서 정복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질문을 하고 대답하게 됩니다.
2.3.1. 첫째, 그 정복자는 누구인가?
그는 에돔에서 돌아오는 오는 영웅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영웅은 군인의 영광스러운 의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정복자의 옷에 훈장 대신 피와 얼룩으로 더렵혀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정복자는 큰 능력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1절) “의기양양함과 승리가 그에게 보였습니다. 그의 외모와 복장은 영광으로 옷 입혀졌습니다. 그는 얼마나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시는지를 보십시오!” 그분의 발걸음의 성대하고 엄숙함은 우리의 영원한 평화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은 위엄으로 충만합니다. 이 힘센 영웅은 누구냐 도대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대한 승리의 장군입니다. 보스라에서 돌아오는 장군입니다. 밤을 지새우며 싸우시던 우리의 장군께서 동녘 하늘에 해가 뜰 무렵 긴 칼과 갑옷에는 대적의 피로 가득합니다. 아침 태양빛에 비춰진 대적의 선혈은 엄청난 승리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거침없이 걸어오시는 우리의 장군 예수 그리스도는 아마도 종교개혁자 루터에게는 매 순간 의지했을 장군이었을 것입니다.
2.3.2. "어찌하여 당신의 의복이 붉습니까?"(2절)
“그 수고와 위험의 표식을 보건대 당신은 얼마나 어려운 봉사를 해왔는가?" 그 용모 속에 위엄과 공포를 소유하신 분이 ”포도즙 틀을 밟는 비천한 노예의 일을 하도록 고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장군께 가당치 않는 일이만 우리를 위하여 노예처럼 그 일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실제로는 구속자의 영광이 되는 일이 처음에는 그에게 불명예스러운 것처럼 보입니다. 강대한 군주가 포도즙 틀을 밟고, 농부의 일을 한다면 체면이 여간 손상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종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셨습니다.“(빌2)
2.3.3 그분은 자신을 말합니다.
"공의를 말하는 나는 구원을 베풀기에 능한 자니라."(1절) 그분은 구원을 베푸시는 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압제자들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을 건지신 구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구세주"를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기 백성들을 저희들의 죄에서 건지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역사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쳐 주지시키십니다.
"그는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1절)
어떤 방해와 난관도 방해가 되는 일로 아무리 그것을 가로막는다고 할지라도 그분은 약속된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약속한 것을 충실히 지키는 자는 바로 나다. 죽음이나 지옥이나 무덤의 권세를 가진 자도 나다. 모든 정복하는 손을 좌절시키는 자도 나다. 구원할 준비가 잘되어 있고, 또한 구원할 힘이 있는 자도 바로 나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핏빛으로 나타나게 되셨는가?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다”(3절) 자신을 포도즙 틀을 밟는 자로 비유되면서 이 비유를 멸시치 않으시고 용납하시며, 그 비유를 계속 들으실 정도로 그는 자신의 승리 속에서도 겸손하십니다. 그는 참으로 포도즙 틀을 밟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이며(계14:19) 우리는 그 포도즙 틀로 던져질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원수들을 거기에 던지시기를 원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망 권세를 가진 자를 멸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원수들에게 종종 행하시고,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유혈극은 바로 그런 일의 예표요 상징입니다. 계시록 1장17-18절입니다.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