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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하며 즐거워하라!

by 인천열린 2024. 11. 26.

제 20항 영혼을 소유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때

 

존재 하는 것들 가운데서 우리가 영원불변한 한 것들만이 즐거움의 진정한 대상이 된다. 나머지 것들은 우리가 영원불변하는 것들을 즐길 수 있도록, 그것들을 통해서 영원불변하는 대상을 즐기는 것이다. 다른 사물들을 즐거워하며 그것들을 통하여 즐거워 하는 우리 자신도 사물이다. 참으로 우리는 위대한 사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죽을 몸에 대한 말이 아니라, 저 동물들보다 높게 만드는 우리의 이성(理性)적인 영혼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을 서로 즐길 것인가? 또는 그 사람을 통하여 즐거워할 것인가? 또는 양쪽을 다 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사랑할 것인가? 또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 사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만일 그 자신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면, 우리는 사람을 즐기는 것이 되며,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를 통하여 그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그런데 그 어떤 존재를 위해서 사랑해야 하겠는가? 만약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신을 기뻐하는 데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 자체 때문에 그 어떤 것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즐기는 것이 곧 행복한 생활이 되며, 그 행복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런 소망을 가지는 것이 현세에서 위로가 된다. 그러나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고 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것은 곧, 그 어떤 사람을 사랑하다보면 그 사람을 의존하면서 마음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떠나는 위험이다.
 
 

제 21항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누구든지 자신을 기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은 자기를 사랑할 때에도 자기를 위해서 사랑할 것이 아니라, 즐김의 진정한 대상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 사람은 그 생활 전체가 영원불변하는 생명을 향하여 가는 여행이다. 그 심정이 전적으로 그 일에 집중될 때에, 가장 좋은 상태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는 자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까지도 즐기지 않고, 변함없는 선(善,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다.)에 지성이 전적으로 집중되며 심정이 열중할 때가 더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까지도 자신을 위해서 사랑할 것이 아니라, 즐기기에 가장 합당한 대상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한다고 해서 노할 권리가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로 내려진 사랑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지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마22:37-39, 레19:18, 신6:5)
즉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과 생명과 지력(知力)을 남김없이 완전히 집중하라는 말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라는 말씀은 이를테면 우리 마음의 한 구석을 비워서 다른 것을 즐기려는 여유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사랑의 합당한 대상으로서 마음에 떠오를 때에, 그것도 우리의 애정의 큰 흐름에 합류시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웃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권면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본줄기와 합류되는 것이며, 사소한 부분이라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본줄기의 수량이 조금도 감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기독교 교양” 중에서

 
『우리는 사랑함에 대하여 얼마나 어눌한 지식으로 살아가는지, 우리는 사랑함에 있어서 얼마나 자기욕망에 붙잡혀 살아가는지, 우리는 사랑함에 있어서 얼마나 종잡을 수 없는 좌충우돌 하면서 살아가는지...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2024.11.26. 화요일 김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