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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표적, 참된 안식을 주시는 메시아!

by 인천열린 2025. 2. 2.

51-9절 주전20250202  세 번째 표적, 안식을 주시는 메시아!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5:1-9)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은 7 가지의 표적을 중심으로 그 표적들의 의미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기록하거나, 표적을 사역의 전환점으로 여기고 복음서 전반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가나 혼인잔치의 표적”(2:1-12)으로 메시아의 공적사역을 알리시면서 나다나엘의 믿음, 그 믿음의 성장을 주시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2)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43-54)은 어리석은 믿음(실리를 추구하는 믿음)에서 참된 믿음으로의 변화와 가족들에게까지 확장되는 믿음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3)세 번째 표적은 “38년 된 병인이 있습니다. 그의 상태는 일생동안 병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철저히 안식으로부터 동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태였으니 육적으로도 안식이 없는 상태요, 영적으로도 참된 안식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던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모든 인생이 그런 처지에 있다는 것을 임시합니다. 그 자체가 절망인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우리 인생들에게 안식을 가져다주실 것인지를 계시한 대목입니다.

 

 

1. 양문(羊門 베데스다 연못,  38  병인

 

1.1. 베데스다 연못의 사람들, 민간신앙과 절망

 

베데스다자비의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병인들이 유대 땅의 민간신앙, 토착 신앙과 같은 신앙으로 모여든 것입니다일종의 미신과 요행을 통해서 치유를 받고자 했습니다. 당시 그릇된 신앙을 전해준 내용이 3-4절에 나옵니다.

 

“3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3-4)

 

어디로부턴가 끌어온 상수관로를 통해서 들어오는 물이 물결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으켜진 불결을 천사가 일으킨 물결로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토착 신앙으로 민간인들에게 떠도는 신앙으로 모인 것입니다. 그런 곳에 38년 된 병인이 그런 어두운 신앙심으로 거기에 기대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마저도 기회를 상실하면서 그 때마다 절망하면서 긴 세월을 보낸 사람입니다. 질병 자체만으로도 너무너무 절망적인데 마지막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민간신앙의 차원에서도 제외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가 절망적인 인생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대로 보여줍니다.

 

1.2. 어떤 면에서 절망이었을까?

 

38   병인, 예수께서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오랜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그는 인생의 긴 세월을 고질병에 매여 허비한 절망적인 생애를 산 사람입니다그저 막연한 신앙심으로 기적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위 세상에서 불치병이라고 알려진 질병에 걸려본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까요?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일생동안 이 질병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습니다. 날고 싶은 새가 날지 못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런 절망감이 마음에 밀려올 때 얼마나 울었는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 눈물을, 특히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써야 했는지 지난 세월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주 어려서는 이것도 몰라요, 좀 세상을 뛰어다니다가 그런 절망에 사로잡히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전혀 안식이라고는 없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절망적인 상태로 광야에 던져진 인생,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속사람의 상태가 엿보입니다.

 

1.3. 전혀 병인의 의지가 아닌, 메시아의 찾아오셔서 베푸신 긍휼

 

요한복음에 세 번째 표적으로 예루살렘, 평화의 도성안에서 행하신 표적입니다. “평화의 도성이라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표적이라는 아주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평화의 도성에 들어가 있다지만 가장 평안이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로 다 채워져 있다고 할지라고 전혀 평화가 없는 상태가 인생이 아닙니까? 38년을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 인생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십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의 치유는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찾아가셨습니다.

5개의 행각으로 이뤄진 곳입니다. 연못이 두 개로 형성된 곳입니다. 가운데 행각은 중심으로 한 쪽은 양을 씻어서 제물로 삼는 곳입니다. 다른 한 곳은 병인들이 찾아와 치유 받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든 곳입니다. 주님은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병인 자신의 의지로는 어느 것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임되지 않은 장면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긍휼과 권세만이 개입된 것입니다. 이 치유의 역사는 그런 면에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그 사람의 치유를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저의 계획이나 저의 치밀한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가운데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마치 어떤 일이 휘말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좀 강권적으로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강권적인 일이지만 내 마음이 매우 큰 기쁨으로 채워지는 가운데 이뤄진 강권(强勸)이었습니다. 끌려가는 것 같고, 기꺼이 가고 싶은 마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오늘 이 병인이 그런 상태였을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경에서 갑자기 찾아온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 병인도 마음에 놀라움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상황이 자신에게 이뤄졌는지를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긴 고통의 세월, 어느 한 순간에 찾아든 광명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육신의 질병만이 아니라 그 어떤 상처와 아픔일지라도, 그 어떤 어려움에 발목이 잡혀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된 인생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참된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모두 그 병인처럼 갑자기 찾아든 광명을 경험한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말씀과 치유하시는 능력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8)

 

2.1. 상처와 절망뿐인 사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씀은 유일한 38년 된 병자에게 엄청난 일입니다. 막연한 기대감에 갖혀 있던 일입니다.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병자는 자유롭게 되는 것을 바라지만 꿈은 이루어질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갈수록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오셨을 때,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것입니다. 38년 된 인생의 상태는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불치병으로 시살다릴 때였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온갖 민간의 치료법을 제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등을 예리한 칼로 살을 찢고서 그 찢어진 살에 민간약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아주 치료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 치료받기 전 달까지는 그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절망과 여러 치유법은 나를 더욱 불신으로 몰아갔습니다. 기대와 절망을 오가던 내 마음은 갈수록 신경질적으로 변질되고,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 치료법은 더욱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38년 된 이 병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거듭 반복되는 절망은 매우 큰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7절의 병인의 대답은 매우 절망과 상처가 깊은 상태의 대답입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7)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이런 것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의지하는 것도 절망적인 민간신앙이었고, 거기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소외된 것 모두가 상처뿐입니다. 철저히 버려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은 매우 큰 아픔을 겪습니다.

 

2.2. 여러분에게 있을 절망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까? 사람들의 도움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까? 삶이 이 세상에서 외면을 당하는 느낌이 듭니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병인이 여러분 자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을 원망하면서 일생을 살아도 해결되지 않을 삶입니다. 온갖 사람들에게 미움을 품고 살아도 아무런 진전도 없다는 것 다 알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세월을 살다가 그냥 그렇게 세상 떠나는 법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자신에게 대해 연민으로 슬퍼하고, 타인에게는 미움으로 악을 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병인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인에게 찾아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병인을 치유하신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치유하셨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절망,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 것만을 보시고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그 병인이 가지고 있을 수많은 것들을 당신의 치유와 형언할 수 없는 긍휼, 육신과 마음, 그 영혼까지를 치유하시는 데로 이끄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까지도 선한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주님은 단지 그의 육신만을 치유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안식을 위하여 이 기적을 활용하셨습니다.

 

2.3.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메시아

 

이때부터 안식일의 오해된 사람들의 생각에 개혁을 일으키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이루시고 싶으신 일이 있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병인의 모든 것을 바꾸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병자의 대답은 “주여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사람이 없어” 이는 불평과 불만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마음과 영혼의 진정한 안식을 알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안식으로 가는 길에 엄청난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육신적으로는 철저히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둘째, 신앙적으로도 민간신앙에 젖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없는 지경입니다. 셋째, 유대교의 거짓된 가르침은 철저히 인간적인 종교 활동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안식을 누릴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3. 안식을 주시려 오신 예수님


3.1. 그리스도의 말씀과 치유의 능력

 

 사람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주님의 말씀, 그분의 명령에는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창조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항상 명령에는 창조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그 순간 무엇인가를 창조해내시는 능력이 발휘됩니다. 당신이 구원하여 은혜를 베푸실 사람에게는 그 명령과 함께 그 명령에 순응할 수 있는 마음을 함께 불어넣어주십니다. 즉 성령의 은혜로 마음에 새로운 마음의 변화를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명령이 매우 달콤하게 들려지고, 맣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를 해쳐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말씀으로 주시고, 내적으로는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점점 자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 말씀을 믿고 실행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주님이 명령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이 우리를 휘몰아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안식일이지만 진정한 안식을 알지 못하는 안식일이었습니다.

 

3.2. 대중들에게 들춰내신 참된 안식

 

그리하여 이 문제를 주님이 계획적으로 대중들 앞에서 들춰내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은 그 날짜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날을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지켰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과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아들오서도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인생에게 안식은 38년된 병인처럼 그분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무어보다도 그분이 찾아오셔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중대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안식의 출발입니다. 그분의 능력의 말씀이 나에게 임했을 때, 비로소 안식하게 됩니다.

 

 

결론과 적용

 

우리 모든 인생이 이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안식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는 자들에게 안식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손길에 변화를 받는 사람이 안식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를 데서 최고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 가장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이라는 유대인의 오해된 안식은 이날로 철저히 폐기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그런 날이 오기 바랍니다. 안식을 누리는 성도, 그 영광스러운 생애를 살다가 주님이 기다리시는, 아지 주님이 찾아오시는 그 날에 영원한 안식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안식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20:12)예수께서 마가복음 2:27-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기적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안식> 찾고우리의 <생각>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참된 안식은 (육신과 영혼)과 복(누릴 수 있음)과 거룩(구별됨이 있음)입니다.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립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