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5장 20-21절 주전20230402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3)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5:20-21)
들어가는 말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큰 주제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리고 "참 되신 하나님과 함께 누리며 살아야 할 우리의 사귐"을 망가뜨리는 문제가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그 것은 바로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 '우상숭배'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할 "영생"을 가로막는 것도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외하면 살아가는 삶에서 무어보다도 '우상숭배"를 경계하고, 우상을 일평생 멀리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계시의 최 정점 : 참되신 하나님을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1.1. 어떻게 우리가 "참되신 하나님"을 알게 되는가?
요한 사도에 의하면, 참된 신자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합니다. 그것은 바로 (1) "우리가 참된 자(하나님)를 아는 것"에 대한 확신과 (2) "우리가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확신 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διάνοια 디아노이아 : 이해력, 마음 사고방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 어떤 신도들로 모두가 거짓된 신들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 사도가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계시하여 알려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도 신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진실로 하나님을 알게 되며,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존재도 "우리 영혼의 아버지"로 계시되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귐을 같이 하시게 되셨으며, 영생을 주셔서 그 생명을 함께 누리는 분도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이처럼 참되신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사귐에 이르지 않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직 참되신 하나님을 모르거나, 다른 우상을 섬기는 중일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확실한 논지입니다.
1.2. 우리는 왜 '참되신 하나님'을 이토록 강조하는가?
"참되신 하나님"으로 언급된 말씀이 신약성경에 몇 군데에 등장합니다.(요5:44, 실전1:9) 살펴보면 하나님이 "참되시다."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거짓된 신"과 대조적으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5:44절에서는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살전1:9절에서는 "우상을 버리고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요일5:21)에서는 "우상을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배경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거짓된 신"에 현혹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구별 짓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 사도가 왜 여기서 "참되신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요한일서의 배경에 달려 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등장입니다. 이단의 등장으로 교회의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그것이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된 가르침이 사실상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신도 거짓된 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신앙의 확신으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 확신은 우리의 생각과 삶의 중심에서 유혹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참되신 하나님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모든 것들이 사실상 우상인 것입니다. 우상의 본질을 품은 것입니다. 이를 경계해라는 말씀입니다.
1.3.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각"
요한 사도는 "참되신 하나님"(20)에 대해서 언급할 때, "거짓된 것"(21)과 대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확신하고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확신은 너무도 중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를 거듭남으로 살려주실 때,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지식과 지각"을 주셨습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누리는 것도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요17:3)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어떻게 누립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각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립니다. 요한 사도는 이 서신에서 "하나님과 사귐,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영생을 우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귐은 전인격적으로 우리의 모든 삶에서 이뤄지는 사귐입니다. 우리의 일상과 특별히 예배에서 뛰어난 영적인 일들 속에서 이뤄집니다. 모든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사고방식에서 항상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로서 하나님과 다르지 않는 본성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참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지니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유일한 무이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오늘도, 그리고 영원토록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영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에게 한 번 더 중요한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곧 "거짓된 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자신을 지켜라.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시간적으로 볼 때 성경 66권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쓰인 성경입니다. 사실상 사도의 유언이나 다름없는 말씀입니다. 우상숭배는 우리가 영생을 누리는 삶에서 가장 큰 걸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우상을 멀리하라!
2.1. (실천적으로) 거짓된 우상을 멀리하라
본문 21절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련된 부정적 표현입니다. "즉 우상을 피하라"는 말씀인데, 사람들은 경고의 말씀을 누구나 듣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사도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이 경고의 중요서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세상, 적그리스도, 거짓된 교사들, 거짓된 교리 등등을 조심하라고 경고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형제를 미워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헌신하는 듯 하지만, 사실상 구체적으로는 진실회지 못한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문제도 경고했습니다.
이처럼 요한의 관심은 항상 실천에 있습니다. 진리에 대하여 이론적인 관심을 갖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독교 진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려고 이 서신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표는 신앙의 실천에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이것이 그의 마지막 당부였습니다.
2.2. 왜 우상을 경계해야 하는가?
"그러면 왜 우상을 이토록 경계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단은 우리의 참된 지식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우리의 관심, 집착, 마음의 방향을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방식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요17:3) 요한의 관점에서 말할 때, 그런 지식이 없이는 결코, 우리가 "영적인 문제들"을 자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바른 지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그분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영생이 있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을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가운데 하나님과 사귐을 누린다면 잘못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1장3절의 교훈을 주었던 것입니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옳습니다. 요한은 이 교훈을 긍정적으로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태를 절대적으로 확신하기를 위해서는 우상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싸움의 대적인 사단은 우리에게 그 참된 지식을 가로막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심과 마음을 다른 데 두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마귀의 전략입니다. 다른 것에 집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항상 사단과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니다. 요한 사도는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3. 우상숭배의 심각한 문제점 3가지
2.3.1 첫째, 영적 삶을 훼방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우상숭배다.
우리 모두에게 직면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행위나 행동을 하는 그 어떤 문제라기보다는 먼저 "우상숭배"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에서 가장 큰 위험은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그 사람이 어떤 관점, 철학,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차원보다는 우리가 항상 놓치지 말고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12:29-31)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어느 죄가 더 크냐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로서 먼저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행위를 불러오는 우리의 태도와 생각이 어떠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누구든 생각하는 바가 그 사람의 존재입니다. 이 원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사랑한다면, 그의 행동과 행위들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질 것입니다.
2.3.2 그러면 우상숭배가 뭡니까?
우상이란? 우리 삶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모든 것입니다. 나의 삶과 헌신을 사로잡는 모든 것입니다. 내 삶에서 중심이 되는 모든 것입니다. 중요한 듯이 간주되는 모든 것입니다. 내게 필수적인 모든 것입니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우상으로 등장합니다.
우상이란? 내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나를 움직이고, 나를 고무시키며, 나를 매료시키고 자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관심과 정력과 재물을 바치는 모든 것입니다. 내 삶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상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바라볼 때 본문은 얼마나 우리에게 실천적으로 교훈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에베소 지역에는 아데미 신전으로 이교도의 사람들에게는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문자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우상숭배하는 그런 것은 성경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상이란? 실제적으로 (형상으로 만든) 우상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거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개념까지를 포함합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고, 그릇된 개념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자신의 개념을 섬기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당시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임하신 것을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개념이 성경적이지 않으면, 그분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갖고, 그런 개념과 관념들을 섬기고 있다면, 성경은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천주교의 여러 형태의 우상숭배는 알려진 일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이나, 성신 숭배, 성인에게 올리는 기도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우상 숭배의 한 형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자신의 종교를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지만 종교적인 의무에 그치고는,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을 섬길 수 있도 있는 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종교뿐만 아니라, 종교 단체, 특별한 공동체, 교파, 혹은 특별한 관점 등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섬김의 대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참되신 하나님의 인격을 잊고서 그분과 관련된 개념이나 이론, 그 어떤 교훈에만 머물러 있기가 너무도 쉽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모두가 다 우상숭배입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의 백성으로서 국가를 우상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가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우상으로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하지 않는 것들, 그 모두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우상은 우리 자아입니다.
모든 우상숭배는 결국 자아로 귀결됩니다. 자기 자녀에게 집요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것은 그가 여러분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의 자아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아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5:21)
여러분 자신의 자아를 하나님이 계셔야 할 위치에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영적인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우상 숭배이며, 우리의 모든 활동 속으로 침투합니다. 우상숭배는 우리와 관련된 모든 활동 속에도 침투합니다. 미국의 설교자 팀 켈러가 쓴 "내가 만든 신"이라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경고한 내용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짜들에게 결별을 선언하라!" "참 하나님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계속 대상만 바뀔 뿐이다." - 팀 켈러 -
2.3.3. 두 번째는 우상숭배에 대항해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은 "너희 자신을 지켜"(요일5:21상) 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상숭배라는 대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요한은 여기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누군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자신을 지켜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우리는 우상에 대해 항상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상숭배를 경계해야 합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 우리를 지키시매" 라고 했습니다. 21절과 모순을 일으키는 듯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죄악 가운데 머물러 거하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경에서 시종일관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완벽한 조화입니다.
다음과 같은 성경의 표현이 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2:12-1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으로 지키시리니"(사26:3)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악한 자가 결코 우리를 붙잡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단서가 똑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 바로 자신을 지켜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그리하면 그분이 나를 대신 해 대적을 물리칩니다. 나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열정과 시간과 관심을 우상에게 바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관심과 마음을 우상에게로부터 결별해야 합니다.
결론과 적용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나 자신을 지켜서 우상에게서 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가 항상 자신에 관한 진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의 고귀한 핏값으로 사신 자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삶이고, 우리의 목적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고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들을 위하여 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각"을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한 그 무엇을 위해 살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상들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선물을 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돈, 소유, 지위, 성공, 다른 어떤 사람, 자녀, 이생과 세상에 속한 그 무엇을 섬기는 사람은 그의 영혼에 비극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께서만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기억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우상숭배에 빠지려는 시험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교제를 누립시다. 우리는 그분과의 친밀한 사귐과 그분의 임재를 자각하며, 그분과 동행을 깨달으며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아무것도, 그 누구도, 우리와 그분 사이를 가로막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항상, 영원히 기억하며 우리에게 우상으로 다가오는 것들과 결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