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설교 07 (벧후1:9) 더욱 힘써 깨끗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베드로후서 설교 07
더욱 힘써 깨끗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1:9)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금 벧후 1:8-11절의 말씀을 살피고 있는 중입니다. 내용인즉, 우리는 반드시 앞에서 언급한 모든 은사들(5-7절)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철칙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소유하지 못하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선한 일들, 즉 하나님의 계명에 나타난 ❶모든 의무들과 ❷복종해야 할 일들, 심지어 ❸하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들, 이 모든 일들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 귀한 은사들을 부지런히 찾고 구해서, 결심한 대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굽힘이 없는 의지로 열심히 살라고 촉구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풍선함과 유익이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모든 은사를 소유하게 되고, 부지런히 살아갈 때, 여러분의 신앙은 점점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은 만족스럽게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벧후 1:8-11절에 담긴 내용입니다.
오늘 9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특히 무엇을 강조합니까? 만약 여러분의 믿음에 이러한 은사가 없으면 1)맹인과 같이 될 것이며, 멀리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심지어 여러분은 자신의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도 망각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우리가 굳센 마음과 굽힘 없는 의지로 부지런히 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1. 영적(靈的) 근시안(靈的 近視眼)을 주의하라
우리의 ‘보배로운 믿음’에 덕과 덕에 지식... 등등의 은사들을 열심히 추구하여 부지런히 살아가지 않게 되면, 우리의 목적지를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원시치 못하고...”(9절)
1.1. 점점 성숙하는 신앙생활
베드로 사도는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만큼, 그 믿음을 충실하게 성자시켜 가는 ‘성화의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서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만큼, 믿음에 따라 힘써서 더해져야 할 각종 은사들(5-7절)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반드시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우애, 형제우애에 사랑을 각각 더해가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여러분의 큰 도전과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리하여 점점 자라가는 보배로운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신앙이 베드로 사도가 기대했던 신앙이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입니다.
1.2. 믿음의 눈을 잃은, 영적(靈的) 근시안(近視眼的)의 폐단
우리가 만약 믿음생활에서 이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무시하고, 믿음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자만(自滿)할 것 같으면 안타깝지만 우리 마음에서 “빛이 떠나버린 상태”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본래 하나님께 받은 믿음이지만 우리는 성장해가는 과정에서는 우리가 이 구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빌2:12절 하반 절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실천적이고 경험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 우리는 힘써 협력해야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믿음의 각종 유익과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듯이 믿음도 균형 있게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사랑에 이르기까지 힘써서 노력함으로 믿음의 생활에 마음과 생각과 시간과 정력을 여기에 쏟아야 합니다.
영적인 건강함에 각종 은사들을 골고루 소유하고 힘써 부지런히 살아갈 때, 건강한 영혼의 영적인 시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시력”은 삶에 무엇이 중요하고, 우리의 인생에 무엇이 급한 것들인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멀리해야 할 것들이 마음의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우면 앞을 볼 수 없는 영혼의 상태를 면하지 못합니다. 사악한 죄악을 자행하고도 자신의 악함과 행동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보험사기와 같은 사회악을 낳게 된 것 아닙니까? 아주 악한 예를 들었지만, 일반 불신자들 속에서도 눈이 어두운 상태가 발생하듯이 믿음생활에서도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의 눈이 멀면 아주 부끄러운 삶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으로 근시안적(近視眼的) 신앙의 폐단을 주의하라!
1.3. 영적(靈的) 근시안(近視眼)을 면하라
영적으로 근시(近視)인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만 볼 것입니다. 육적으로 느끼는 것만 보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정욕에 끌리는 것만 보려고 하고, 보는 것마다 그렇게 보여 질 것입니다. 그는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앞에 있는 일시적이고 현재적인 것에만 마음에 품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인생을 즐기기만을 원하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의 삶과 이 세상과 다른 하늘나라의 삶은 마음에 품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계시의 말씀에서 말씀하신 천국의 삶도 잊어버립니다. 그는 이 세상에 집착하여 자신의 주변에 그렇게 많은 세상사와 이 세상의 화려한 보상들과 이 세상의 행복과 기쁨, 세상 사람들이 목적으로 삼은 모든 것들만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것들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은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지를 알지 못하게 되어 최종적인 목표지점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는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도에 의하면 그는 다 잊어버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을 잊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보다 슬픈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靈的) 근시안(近視眼)입니다. 믿음의 눈을 잃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에 각종 은사들을 부지런히 구하고, 실천적으로 훈련되고 갖춰나가면 믿음의 눈은 더욱 밝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고, 결정해야 할 일을 제대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생각이 주어질 때, 자신의 정욕에 의한 유혹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인지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절제하고, 오래 인내하는 참음을 갖춰서 어려운 시기를 그렇게 돌파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이 세상의 바람에 휩쓸려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靈的) 근시안(近視眼)을 면하기 바랍니다. 보배로운 믿음에 각종 은사를 부지런히 구하십시오. 실천적으로 사십시오. 믿음의 훈련장을 떠나지 마십시오!
2.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지 말라.
사도는 이어서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에 각종 은사들을 힘써서 더해가지 않고, 신앙의 실천적이고 훈련되어야 할 것을 우리가 무시하면서 살아가면, 우리는 결국 앞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9절 하)
2.1.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음 : 영적인 망각
믿음에 각종 은사를 더하지 않으면, “자신의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은 것입니다.” . 마침내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베드로가 이런 말을 썼을 때 그는 틀림없이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는 신체적인 의미에서 인생행로의 끝에 와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에게는 하나의 좋은 실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육신이 근시안(近視眼)으로 가까이를 볼 수도 없었고, 뒤를 볼 수 없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는 이 심각한 문제를 영적인 일에 적용한 것입니다.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무슨 뜻일까요?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 깨닫게 한 그 고귀한 목적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취지와 이유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성육신 하신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런 고귀한 지식과 생각을 잊은 것입니다. 구원의 고귀함을 잊은 것입니다. 구원을 감사하지 않고, 자신의 정욕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세상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으로 돌아가면 해답을 발견합니다. 즉,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 왜 그랬습니까?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에 각종 은사로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눈먼 자가 되어서 앞도 볼 수 없고, 뒤로 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습니까? 그가 성육신하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왜 영원히 신성한 실체께서 하늘나라의 궁정을 물러나, 이 땅에 내려왔는가를 알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의 대답만이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왜 그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왜 그의 몸은 찢기고 피를 흘렸습니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상징이고, 하나의 극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말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목적이 디도서 2장 14절에 소개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즉, 여러분은 예수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일부러 오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것을 믿는다면 그것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즉, 그가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의 신성의 영광을 벗어던지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들과 생활을 같이 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죄인들의 반대를 당하면서도 그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우리의 죄의 세력과 오염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었던 십자가상의 수치와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완전하고 흠 없고 거룩하게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믿는다면, 그곳이 바로 여러분의 모든 위치의 배경이며, 시작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이 해야 할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가능한 한 죄를 멀리하십시오! 죄를 증오하십시오!
2.3. 계속 죄에 있다면 사죄의 은총을 망각한 것
주님께서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원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죄 안에 계속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더욱 힘써 자신의 부르심과 택하심”(10)을 굳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에 덕과 지식, 절제와 인내,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를 공급하는데 매우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의 옛 죄로부터 깨끗하심을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온갖 굴욕을 당하신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과 죽음,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든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이 진리를 잊은 사람은 매우 모순적인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나, 아직 죄 안에 계속 있다면 여러분은 십자가를 팔아먹은 악행을 다시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부끄러워하십시오! 기독교 생활의 제일이 되고 근본이 되는 목적을 잊어버린 사람은 가장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결론과 적용
우리의 신앙생활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와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더블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 목적 삼으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심 안에서 영원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으십시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확실한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분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사는 것입니다. 히12:14절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주님을 뵙기를 원한다면 거룩함을 좇으십시오!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신약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며 순결하시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참으로 주님 뵙기를 원한다면 한 순간도 함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시작하십시오! 그분의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영적(靈的) 근시안(近視眼)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절망 뒤도 돌아볼 수 없는 비참한 지경이 도래할 것입니다! 벧후1:5-7절을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믿음의 덕, 활력 있는 믿음생활을 누리십시오!
믿음의 지식,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을 기초로 단단히 세우십시오!
믿음의 절제, 절제의 능력으로 달려야 할 때와 걸어야 할 때를 조절하십시오!
믿음의 인내, 끝까지 굴복하지 마십시오, 불굴의 의지로 그 일을 성취하십시오!
믿음의 경건, 주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십시오!
믿음의 형제우애, 그리스도인을 사랑하십시오!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십시오!
믿음의 사랑, 인류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십시오! 이웃을 아끼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 모든 일에 힘써서 최선을 다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