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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성경을 낭독하는가?

인천열린 2024. 12. 1. 08:54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4:16-20)

 

 

들어가는 말

 

회당 제도가 바벨론 포로 귀환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고을마다 회당을 높은 곳에 세우고, 경건한 신자들이 각 고을마다 찾아들고 함께 기도하며 찬양하는 일로 안식일을 말씀과 기도, 설교와 찬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나사렛 회당에 찾아가신 시기는 아마도, 가나 혼인 잔치(2:1-12)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표적을 행하신, 그 주간이었을 것입니다. 16절에서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이 부분을 주목합니다. 안식일이 되면 예루살렘로부터 멀리 살는 사람들은 이처럼 마을에 곳곳에 회당을 지어 성전을 대신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석양이 기울어지면, 마을보다 높은 곳에 지어진 회당의 옥상에서 회당지기들 중에 담당자가 나팔을 3번을 붑니다.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모든 일손을 내려놓고, 노동을 중단합니다. 드디어 안식일 기간으로 들어갑니다.

 

안식일 아침 동산에 해가 떠오르면 사람들은 하나 둘씩 회당으로 모여듭니다. 회당장의 주도아래 안식일의 행사를 주도합니다. 특히 그날에 교육과 설교를 맡은 사람은 자신의 순서를 주관하고, 모세의 율법을 읽습니다.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상황에 따라 통역을 하고, 누군가 나와서 성경(모세오경)을 낭독합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고, 그런 다음 그 말씀을 해설할 사람이 말씀의 뜻을 이해시켜 줍니다. 그런 다음 기도와 설교가 진행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설교하신 것입니다. 특히 이 장면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유대인의 회당이 기독교 교회의 요람과 같다는 생각을 줍니다. 그런 인식을 갖도록 그림처럼 보여주신 장면입니다. 유대교의 회당에서는 기도하면서 성경을 낭독하고 듣습니다. 회당은 고을마다 재판을 여는 곳입니다. 깊은 상담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이처럼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생활에서 있었던 성경 낭독, 그 역사의 일면을 살펴봅니다.

 

 

1. 성경 낭독의 역사

 

1.1. 모세 시대의 성경낭독

 

이처럼 성경 낭독은 구약의 모세 시대에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사도들의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교부들의 시대에도 일반적이었습니다. 모세 시대로부터 이후로 예배의 중심에 성경 낭독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여러 곳에서 성경을 낭독하는 장면이 발견됩니다. 31:9-12절입니다.

 

“9.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31:9-12)

 

모세는 신명기1-30장을 기록하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입명하는 과정입니다. 7년 째 안식년 초막절에는 모든 사람들을 약속된 자리에 모아서, 여호와 말씀인 성경을 낭독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유는 12절에 언급된 것처럼, 1)그들로 하여금 듣게 하고, 2)배우고, 3)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4)그리하여 삶에서 그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예배 공동체가 함께 낭독하는 성경을 듣고,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우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낭독의 이유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살아갈 후손들에게도 이 일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후계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이 일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책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모든 사람이 성경을 각자 소유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더욱 읽혀지지 않습니다.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1.2. 포로귀환 후 집회에서 성경낭독

 

그로부터 1,00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제국에 이스라엘은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역사는 바뀌어 포로에서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성경을 낭독하고 그 말씀에 감동된 사람들이 함께 엎드려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9:1-6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8:1-6)

 

이 장면은 매우 위대하고 역사적인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대목입니다. 당시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 (깊은 슬픔과 감사, 여호와의 영광을 목도한) 자리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고, 다함께 경배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 주변에 신앙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타락한 제사장들이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를 반영한 일로 시대는 매우 혼탁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어두운 순간처럼 보였던 때입니다. 그런 가운데 여호와의 율법책을 들어서 낭독하고, 엎드려 회개하며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역사상 교회가 거룩한 부흥을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거기엔 어김없이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1.2. 회당과 성경낭독(기원전 500년대부터- 초대교회)

 

회당의 역사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기원전 500년대 무렵, 포로귀환 무렵부터 이스라엘에는 회당 제도가 활발히 일어납니다. 점점 이스라엘에는 회당이 번창해갑니다. 각 고을마다 회당이 지어지고, 지역마다 신앙인들이 모여서 함께 말씀을 듣고, 설교를 들으며,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런 관행은 점차 유대교 예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기독교 예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배에서 기도, 성경 낭독, 강론 등은 회당에서 유대교의 예배로 정착합니다.

 

예수님도 회당에서 말씀을 읽고 강론하는 일에 참여하셨습니다.(4:14-30) 이는 예수님과 제자들도 유대인들의 성경 낭독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말씀 낭독과 가르침은 회당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에서 신앙생활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기독교 예배의 상황에 맞게 바꾸어 적용했을 것입니다. 성경 낭독은 이렇게 초대 기독교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4:13)고 부탁합니다.

주목할 사실은 회당 예배에서 성경 낭독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과 함께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기도하며,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기독교 예배는 많은 부분에서 유대교 예배 의식과 같은 형태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초기 몇 세기 동안 예배에서 성경 낭독이 계속되었고, 이러한 역사는 기독교 예배에서 더욱 강화되어 4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예배에서, 구약에서 한 곳, 신약에서는 복음서와 서신서를 낭독하였습니다. 이런 낭독은 언제나 복음서를 낭독하였고, 복음서를 낭독할 때는 성도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함께 들었습니다.

 

1.4. 오늘날 교회와 예배 중에 성경낭독

 

예배 시간에 찬양과 설교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합니다. 갈수록 짧은 예배를 기대합니다. 온간 방식을 다 동원하여 짧은 예배시간으로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자연스럽게 성경 낭독 시간은 거의 없애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찬양으로 채워집니다. 예배에서 주로 시편으로 된 교독문이 있지만 그마저도 형식적인 교독문으로, 예배에 번거로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예배하는 자들은 말씀 예전을 인식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들, 즉 빠른 시간에 실리적인 예배를 추구합니다. 성경 낭독은 설교와 똑같이 중요하고 대등한 예배의 요소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예배에서 성경을 낭독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수단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왜 성경 낭독을 예배에서 외면했을까? 아마도 성경 낭독이 형식적으로 흐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식적인 성경낭독이 짧은 예배시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2. 성경낭독은 왜 하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그러면 우리는 이제 성경 낭독을 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지 주일에라도 성결읽기를 해서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자는 단순한 취지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이렇게라도 성경 읽기를 해서 성경을 읽지 못한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일에 성경을 낭독할 때, 마음을 다하여 집중하려고 합니다. 건성으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낭독자는 사전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먼저 한 주간 낭곧할 내용을 몇 번이라도 읽고 오셔야 합니다. 여러분 읽으면서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깨달음과 감화가 있어야 합니다.

 

2.1. 주일 예배에서 성경 낭독의 목적

 

성경 낭독의 목적은 직접 말씀을 듣는 것과 그 받아들여서 마음에 간직하고, 고통스럽게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실행해야 합니다. 24:7-8절입니다.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들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니라.’”(24:7-8)

 

죽음으로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피 입니다. 말씀을 들은 우리는 이제 순종해야 할 거룩한 의무감이 마음에 솟아나야 합니다. 거룩한 열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에서 성경 낭독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경을 낭독하는 이면에는 듣는 행위가 있고, 듣는 행위는 공동체 행위이다. 듣는 행위를 통해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우리 상호 간에 살아있는 관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예배에서 성경을 낭독하는 것은 도움이 되는 조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들으,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성경의 기능을 이렇게 말한다. “책의 일차적인 존재 이유는 우리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저자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그들의 주장들을 들으면서 그들과 함께 논의하고, 그들의 답변을 들으면서 그들에게 질문할 수 있도록, 저자와 독자들이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책이다.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이야기들을 비인격적으로 읽으면 우리는 그것들을 왜곡하게 된다 (Eugene Peterson, Working the Angels, 99).

 

성경을 공적으로 낭독하는 것은 은총의 수단이다.

 

공적으로 성경을 낭독하는 것은 우리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는 강해진다. 성경 낭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은총의 수단이다. 예배에서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단지 설교만을 통해서 듣는 것은 아니다. 예배에서 성경 낭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듣는 것은 영의 양식을 순수하게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밥을 먹어야 하듯이 성경 낭독을 통하여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순수하게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에서 성경을 낭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체험적 경험, 선입견, 느낌, 취향, 교리 체계 등으로 구성된 인식 필터(cognitive filters)를 통해 보지 않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체로 듣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성경 낭독은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해석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행위입니다.

 

 

3. 끝으로 성경낭독 어떻게 할까?

 

1. 낭 독 자 : 최영진 낭독범위 : 마태복음 1-4

 

2. 준비사항 각 자 성경책을 지참하여 참여합니다.

정시에 참여합니다.

주님 앞에서 마음을 다하여 낭독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낭독자는 사전에 충분히 준비해 주기 바랍니다.

 

내용요약 : 제네시스’(시작,기원,탄생,계보)로 시작된 마태복음입니다. 인류 역사 속으로 출현하시는 메시아의 장엄한 장면입니다. 죄 없으신 메시아의 출생과 이 세상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길을 여는 선지자 세례요한의 회개의 복음그리스도의 복음이 천국의 문을 여는 가장 위대한 장면입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세례와 시험을 받으심에 집중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기꺼이 연합하셔서 구원을 성취하십니다.

 

끝으로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19:7-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