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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 째 표적 오병이어, 이 표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인천열린 2025. 2. 9. 09:41

61-15절 주전20250209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6:1-15)

 

 

1. 서론

 

여러분, 요한복음의 큰 표적들 중에서 4번째입니다. 모든 복음서에 기록된 기사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 표적입니다. 이 표적은 빌립(안드레, 베드로)의 고향 벳새다에서 보이신 표적입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얼마 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벳새다는 그 헤롯의 통치권 밖입니다. 가버나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 북동쪽에 있는 넓은 평지를 가진 곳입니다. 종교적으로 큰 혼란이 유대나라에 몰아쳤습니다. 당대의 선지자 세례 요한을 잃은 유대인들의 마음은 큰 충격에 빠진 시기였습니다. 명절 유월절이 다가 옵니다. 갈릴리 지역 사람들, 특히 헤롯 안디바가 통치하는 서쪽의 사람들이 모여서 갈릴리 바다 동쪽으로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종교적 순례자들이 당시에는 참 많았습니다. 그런 무리들이 선지자를 자신들의 헤롯왕의 광란에 의하여 선지자를 잃고 방황하던 시기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큰 군중을 이루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은 매년 있는 일입니다.(예수께서 12살 때의 장면을 연상하라.) 그 군중이 장정만 5000여명이니까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2만여 명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보면서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북쪽 해변을 따라 벳새다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있습니다. 주님은 (가버나움 지역)디베랴에서 뱃길로 제자들과 함께 여기 벳새다에 도착하셨지만 그 많은 군중들은 해변을 따라 온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증언에 따르면, 벳새다로 오는 길은 해변 길로 걷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을 정도였답니다. 헤롯 분봉 왕 통치 영역을 벗어나는 가장 짧은 곳 벳새다였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큰 군중들은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고 모여들기에 매우 복잡했습니다.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군중들도 식사할 겨를도 없이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시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큰 동정과 긍휼의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6:34)

 

그 큰 무리를 보시고, 빈들에서 그들을 먹을 것을 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침 유월절이 가까운 시시기였습니다. 그 큰 군중을 보시면서 주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 시대의 광야 백성들과 여기 벳새다 들판에 모여든 사람들, 선지자를 잃은 백성들, 배고픔을 견디면서 따라온 군중들을 보시면서 큰 동정심을 느끼신 것입니다. 만나를 먹으면서 따르던 광야의 사람들을 추억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행로에서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주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먹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자비와 긍휼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의 모든 표적이 능력과 권세로만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행하셨습니다. 배고픔이나 목마름, 병든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결핍된 상태를 보시고 주님은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풍성하게 먹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눈여겨봅시다. 오병이어가 그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2. 본론

 

A. 사건의 배경

 

갈릴리를 통치하던 헤롯 안디바가 세례 요한을 참수형으로 죽입니다,(14:1-12) 갈릴리 디베랴(헤롯 안디바의 통치 영토)에 계시던 예수님을 헤롯이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소식을 듣고 세례요한이 부활했다는 말을 듣게 되자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빌립이 통치하던 벳새다로 배를 타고 건너가십니다. 디베랴에서 빌립의 고양인 벳새다(헤롯의 통치권 밖)로 제자들과 함께 건너가신 예수님은 벳새다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 큰 무리의 등장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런 의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풀리지 않는 대목입니다. 헤롯 안디바의 간악한 통치가 만연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유월절을 기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순례자들의 무리였을지도 모르고, 선지자를 잃은 직후, 종교적으로 방황하던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헤롯은 마음이 떠난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다운 임금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벳새다 평지 광야에 몰려든 것은 이미 가버나움에서부터 예수께서 병인을 고치신 일로 모여들었던 무리입니다. 그들은 헤롯에 대한 분노와 선지자를 잃은 충격,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상 헤롯왕은 로마의 앞잡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시대적인 절망과 아픔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무리들이 함께 모여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무엇으로 먹일까?” 시험하시듯이 제안하신 것입니다.

 

B. 빌립과 안드레의 반응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이 표적을 행하실 때 제자들과 특히 빌립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거기가 빌립의 고향이니까 지리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물으신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군중들을 위해서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일 수 있을지를 물으셨습니다. 빌립은 계산했습니다. 단 번의 이 많은 사람을 먹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조금씩만 먹인다고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이 넘는다고 말함으로써 제자들에게 없는 금액?) 현실적으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 안드레가 좀 더 구체적으로 현장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소년에게 초라한 음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반찬으로 먹는 5마리의 물고기와 어부들이 바다에서 자주 먹던 보리떡 2개만이 있을 뿐입니다. 큰 군중이 배고픔과 시대적인 절망, 선지자를 자신들의 왕에 의하여 잃어버린 이 비극적인 시대적 아픔이 공존한 시기였습니다.

 

(적용) : 우리 시대를 봅시다, 물론 오늘날 권력자들을 보면 분노가 일어나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이 시대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백성들을 보는 관점으로 봅시다. 너무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대부분 큰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미 주님의 마음으로 군중들을 이끌지 않습니다. 마치 헤롯의 군사와 신하들이 취했을 방식으로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을 대신해서 온갖 싸움판으로 만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군중들을 보면서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품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들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를 불쌍히 여기고, 떡 바구니를 들고 군중을 섬기던 제자들처럼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을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정의를 세우고, 공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C. 오병이어의 기적

 

그 때 주님은 사람들을 식사할 수 있는 대형으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와 떡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제자들은 준비한 버드나무 줄기로 만든 광주리 하나씩을 가지고 주님께서 떼어주시는 떡과 물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자들의 광주리에는 점점 떡과 물고기가 점점 가득했습니다. 장정 5000명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도 먹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놀라운 현상이 제자들의 직접적인 체험과 현장에서 동참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무도 나누어 먹이셨습니다. 그러고도 12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광경은 큰 파장을 일으킨 일었습니다.

 

이 큰 표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오랜 세월 기다렸던 유대인들에게는, 얼마 전 잃어버린 선지자로 인하여 상실감이 매우 컸습니다. 대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들 앞에 계시는 저분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그 선지자인가 강력한 의문과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자신들의 선지자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는 유대인들에게 왕직에 가까운 모세와 같은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기다림에는 사실상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써의 선지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큰 표적은 드디어 군중들의 강렬한 확신을 몰고 왔습니다. 선지자 세례 요한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선지자는 그 헤롯과 권력자를 넘어서는 통치 권력까지를 염두 해 둔 선지자로 상상했을 것입니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심정의 절박함만큼이나 대중의 심리를 매우 절박했습니다. 이제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보다도 왕궁을 접수하여 세상을 다르시는 왕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당대의 헤롯에 대해 반역일지라도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삼고자 했던 의도가 깊이 배어나오는 대목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곁에서 다급하게 떠나셨습니다. 그들을 설득한 겨를 도 없으셨습니다. 다가오는 유월절은 왕으로 예수살렘에 들어가시겠지만, 어린 양의 피를 흘리는 방식으로 유대인의 왕이 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과거 모세 시대의 군중들과, 현재 여기 벳새다 광야의 군중들, 그리고 장차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게 될, 유대인의 왕으로써의 막중한 사명을 연상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동쪽 멀리 산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굶주린 백성들을 풍성한 음식으로 먹이셨습니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공급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빌립과 안드레, 베드로의 고향 벳새다 평지에서 보이신 표적입니다. 빌립과 제자들을 시험하심으로써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아주 실감나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의 육적인 왕이 아니라 영원한 왕으로써 사명을 감당하시고 계신 것을 제자들이 선명하게 깨닫는 표적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유월절에 이루어질 일을 예비적으로 당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지만 영원한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을 자비와 긍휼로 풍성하게 먹이기시고, 절망을 소망의 성취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실 것을 보여 주신 장면입니다.

 

 

D. 사람들의 반응

 

오병이어의 표적은 구약의 언약새 시대의 언약으로의 큰 전환점입니다. 그런 장면입니다. 선지자였던 모세에게서 메시아로의 전환, “광야의 만나에서 생명의 떡으로의 전환, “육신적인 통치에서 영원한 왕의 통치로의 깨달음, “유대 역사의 변화를 추구하던 군중들에게서 구속사의 전환점을 여실히 보여준 표적입니다. 위대한 시대적 전환점입니다. 사람들의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역사의 실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육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육적인 임금으로 예수를 옹립하려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강렬한 민족주의가 발동하는 장면이요, 어리석은 짓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 대목입니다. 이미 주님은 육적인 영광을 광야의 마귀에게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물리쳤습니다. 육적인 열정과 광분을 물리치시고, 다급하게 제자들을 뱃길로 다시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동쪽 깊은 산으로 돌아가셨던 이유는 다가오는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로 물들여질 예루살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세례요한의 피 흘림은 절망적인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결론

 

이 세상의 현상에 의하여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 조국의 교회가 지금 절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왕성을 향하여 이 시대를 재촉하시는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정치와 군사적인 대통령 자체에 우리의 소망이 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섭리하여 이 시대를 다루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어린양의 피로 이루신 위대한 구원의 결정적인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다스림으로 이 나라와 세계만방을 큰 권세로 다르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 표적을 행하신 다음 날, 관련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그 표적(오병이어)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행하시는 것을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6:30)

 

주님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신다.”(6:32)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이렇게 요한복음은 주님의 선명한 말씀을 친절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참다운 떡을 주시는 분으로 크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병이어의 표적에 담은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기도를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구할 것을 가르치신 것처럼, 주님은 당시 군중들의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먹이실 양식을 공급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집중시켜 진정한 떡”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내셨습니까? “생명의 떡으로 보내셨습니다. 이 사실을 이 표적에 담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표적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먹어야 할 진정한 떡은 생명의 떡입니다. 진정한 떡의 원천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옵니다. 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주신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