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로 그분을 구주(σωτήρ)라 부르십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요일4:14)
들어가는 말
"사도의 증언"이 기독교 신앙의 근거라 했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심”과 함께 바른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 자신들의 뛰어남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로 임명되어 증거 하는 복음 자체의 권위 때문입니다. 그 증언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구주이십니까?
사도들의 증언은 무엇인가?
사도들이 직접 듣고, 보고, 만진 바 되신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증언은 누구를 증언하는 것이었습니까?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증언의 골자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의 말씀은 무엇이었는지?입니다.? 입니다. 사도들의 증언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증언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구주(σωτήρ)이신가?
한 걸은 더 들어가서 그러면 “그들의 증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어떤 의미의 구주이신지, 어떤 관전에서 “구주”라는 것인지가 사도들의 증언에 매우 중요하게 제시됩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단지 인간적인 어떤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들이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의 증언"을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믿음" 위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정치적 선동가가 아닙니다. 단지 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단지 인간 철학가도 아닙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이 말하던 대로 “연약한 갈릴리 사람”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간주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결국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구주(σωτήρ)”이십니다.
왜 사람들과 사도들의 증언이 서로 다르게 된 것인가?
왜 당시 관원들도 예수님을 보았지만 사도들의 증언과는 달랐을까요?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한 사람으로 보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고 세상의 구주로 오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며, 믿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던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런 차이를 두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 세상의 구주이심을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구주로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성령에 의하여 증인으로 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고전2:10)하십니다.
성령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사도들은 그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분에게서 “은혜와 진리”를 보고 알게 되었으며 경험했습니다. 그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사실을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증인으로 파송받은 것입니다.
요한은 변화산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보았습니다. 너무도 영광스러워 베드로가 말한 대로 거기에 머무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산 아래의 비참한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는 주님의 의도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사도들에게 맡겨질 사명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이렇게 변함없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주로 보내신 유일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오순절에 보내어 주시고, 사도들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고 담대히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결국 사도들을 그 증인으로 세우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들의 증언에는 어떤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위하여 무엇을 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주께서 오셔서 행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의 비참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속에 처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행하셨던 일을 전파하는 자들이 사도들이었습니다. 즉, 인간은 구원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시고, 율법의 심판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받으셨습니다. 율법은 꼭 순종해야 할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율법은 심판이 이뤄져야만 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심판이 엄연히 실행될 것을 제시합니다. 그리하여 율법대로 주님은 심판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위리가 받아야 할 심판 말입니다. 우리가 받게 되면 영원한 죽음입니다. 주님은 그 심판을 우리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희생 제물로 자신을 내놓으셨고 동시에 주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히9:12절입니다.
“염소와 송하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분은 우리가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던 데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인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기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죄인들의 죄악을 도말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던 모습처럼 주님은 천국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쉼 없이 중보 하십니다..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길을 여십니다. 요일2:1절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παράκλητος)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결론과 적용
이와 같은 사도들의 증언의 골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의 근거는 “성령을 보내주심”과 “사도들의 증언(신약성경)”에 있고, 그들의 증언은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라는 것이며, 죄와 사망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주라는 내용의 증언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의 구주로 알고 있습니까?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생애를 의탁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염려와 걱정이 이 사실들 위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께 나아갑시다. 모든 아쉬움과 두려움과 외로움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큰 변화를 받습니다. 그 일이 경험되시기를 빕니다.
결국 사도들의 증언인 신약성경을 떠나서는 결코 기독교가 아닙니다.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주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요한 사도가 말하는 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