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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의 <하나님의 큰 일> 읽기

【하나님의 큰 일 02】그분이 최고선임을 성경은 어떻게 증언하는가?

by 인천열린 2023. 2. 2.

【바빙크의 하나님의 큰 일 02】 제2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께서 인간의 최고선이라는 사실은 성경이 증언하는 진실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식하고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하셔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천상세계에 이르는 완전한 회복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위대하고 포괄적인 은혜언약을 그 내용으로 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는 그 계시의 중심점과 그 계시의 정점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행위의 원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의 씨요.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의 배아이다. 하나님께서는 행하심으로 그 말씀을 실현하신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을 통하여 사물들을 무로부터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요 1:14)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있었고, 그분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그리스도는 동시에 인간의 생명과 빛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맡기셨고, 하나님의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서 표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들이 그분 안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우리에게 선포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표현된 하나님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스스로를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따라서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다.



“당신은 우리 하나님이요 우리는 당신의 백성입니다.”라는 끝없이 다양한 신앙의 말들로 모든 시대에 걸쳐서 교회는 대답하고 있다. 그런 신앙고백은 과학적이거나 교리가 반복되고 있는 메마른 형식이 아니라, 신자들이 깊이 느끼고 인생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현실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선지자들과 사도들, 그 후 그리스도 교회에서 나타나는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추상적 개념’이나 ‘철학화’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삶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입고 있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신자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합리적으로 분석해서 나오는 차가운 개념이 아니라, 살아 계시며 인격적인 힘이었고, 신자들 주위의 세계보다 무한히 더 본질적인 현실이었으며, 영원하신 경배의 존재로서 유일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애에서 하나님과 함께 생각했고 하나님의 장막 안에 거하고, 마치 그분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했다. 하나님의 전 뜰에서 봉사했고 그분의 성소에서 그분을 경배했다.

그들의 경험의 순수함과 깊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를 그들이 사용한 증언 속에서 나타났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왕이시며 주님이시요. 지도자이시며 목자이시요, 구주시요, 의사요, 보혜사요, 사랑이요, 아버지이시다. 그들의 구원과 축복, 진리와 의와 생명과 긍휼, 능력과 힘, 평화와 안식 등, 모든 것이 그분 안에 발견된다. 그분은 그들에게 태양이고, 방패시며, 빛이시고, 불이시며, 근원이시고, 원천이시며, 반석이시고, 피난처시며, 높은 산성이시요, 장이시고, 그늘이시며, 성이시고, 성전이시다. 세세하게 세분된 물건으로 제공해야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의 백성에게 유용한 구원의 풍성한 형상이요 모양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모든 소유물을 초월한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느꼈던 경험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백성들의 기쁨을 위해서 선물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한 영생, 곧 구원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다고 하셨다. 그 지식은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다른 모든 지식과는 다르다. 그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원리와 본질의 차이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 근본과 대상이나, 그리고 그 본질과 효과 면에서 피조물들에 대한 지식과 다르다. 그 근원에 있어서 무엇보다 다른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있다. 확실히 다른 우리의 모든 지식은 이성에 의한 통찰과 판단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노력과 연구로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리스도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은 그분 밖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학문의 전당에서도 유명한 철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를 아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의 대상에 있어서 다른 모든 지식과는 구별된다. 다른 모든 지식에 있어서 그것이 우리 시대에 무엇보다도 그 영역이 아주 넓어졌더라도 피조물들 둘레에 빙빙 돌고 있고, 유한한 것에 제한되어 무한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대제사장(요 17장)의 기도에서는 우리와 함께 사신 분이 다른 지식을 물리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대신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이 알아가는 지식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는가? 무한하시고 불가해하시며, 시간과 영원히 측정할 수 없으며, 천사들도 목전에서 그들이 얼굴을 날개로 가리게 하는, 접근할 수 없는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분이 코로 숨을 쉬고,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인간에게 어떻게 알려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이해를 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만이 아버지로 우리에게 보이셨고, 그리스도께서만이 그분을 우리에게 증거 하셨다. 오! 인간들이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지혜 자나, 서기관들이나, 이 시대의 변사에게 묻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귀 기울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근본과 내용이 특유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본질을 결정한다.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 속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보로서의 지식”이 아니고, 실제를 대신하는 “하나님 자신을 아는 지식”인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피조물 즉 식물, 동물, 인간, 나라, 백성에 대해서 책으로부터 아는 것은 직접적이고 인격적 지식이 아니다. 지식인데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정보로서의 지식’은 어떤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어진 묘사에 해당되지만, 진정한 앎이란 인격적인 관심의 요소와 인격적인 개입과 마음의 활동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적으로 직접 보고 통찰한 것이다. 그분은 자연 가운데, 말씀 가운데, 섬김 가운데 처처에서 곳곳마다 보았다. 누구보다 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무엇에든지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의 지식은 진리를 행하신 그리스도의 실천과 항상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지식과 사랑을 그리스도께서 병행하셨다.



실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우리가 그분 자신을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아느냐, 그리고 우리 생애의 길에서 구체적으로 그분을 대면했느냐, 또한 우리의 영혼의 체험 속에서 그리스도의 덕과 의와 거룩을 알았느냐? 그리고 그리스도의 긍휼과 은총을 알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 지식은 믿음의 지식이라고 한다. 확신된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은총으로만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지식이다. 죄의 용서요. 영원한 의요. 하나님의 구원인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보잘것없고, 연약하며 오류가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 높으시고 거룩하며 홀로 지혜로우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체 어찌 알겠느냐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렇게 얻게 되는 한, 그 행사와 열매가 필연 영생이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참으로 지식과 생명(삶)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인간들에 있어서 가장 부요한 인생은 최대의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 지식이 삶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이 지식은 피조물을 아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이 지식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소생케 하는가! 하나님은 죽음과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생명과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하시고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케 하신 모든 자들을 죽음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일으키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라고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생과 한없는 기쁨과 하늘의 축복을 가져온다. 이것들은 단지 효과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자체가 곧바로 새롭고 영원한 축복의 삶인 것이다.

이런 정신에서 존 칼빈은 <제네바 요리문답>에서 “사람의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뇨?”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으며, 분명하고 힘 있게 그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도 이와 같이 ”인간의 으뜸가는 목적이 무엇이뇨?”라는 질문으로 그 교훈을 시작한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짧고 의미심장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오늘의 기도


맞습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지 않도록 저희를 늘 채근해 주십시오! 조금 더 주님을 알 수 있게 저희들의 지성을 열어주시고, 조금 더 주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저희들의 영혼을 깨워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