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주일 (1-2문답) 강해
1문 :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입니까?
답 :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의 죄와 그 비참이 얼마나 심각하며11 둘째 어떻게 그 죄와 비참에서 벗어나며12 셋째 어떻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인가 하는 일입니다.13
1)로마서 14:7-9 2)고린도전서 6:19-20 3)고린도전서 3:23; 디도서 2:14 4)베드로전서 1:18-19; 요한일서 1:7-9; 2:2 5)요한복음 8:34-36; 히브리서 2:14-15 ; 요한일서 3:1-11 6)마태복음 10:29-31; 누가복음 21:16-18 7)요한복음 6:39-40; 10:27-30; 데살로니가후서 3:3; 베드로전서1:5 8)로마서 8:28 9)로마서 8:15-16; 고린도후서 1:21-22; 5:5; 에베소서 1:13-14 10)로마서 8:1-17 11)로마서 3:9-10; 요한일서 1:10 12)요한복음 17:3; 사도행전 4:12; 10:43 13)마태복음 5:16; 로마서 6:13; 에베소서 5:8-10; 디모데후서 2:15; 베드로전서 2:9-10
들어가는 말
위로(慰勞)의 문제를 먼저 거론하게 된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도 확고하고 견고한 위로를 얻어야만 하고, 우리가 위로를 얻게 되기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계시하신 이유도, 우리가 진리를 배우는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 영원한 위로의 골자는 다음가 같습니다. 그것은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 하는 것이며, 그분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며,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그분이 우리를 영원토록 구원하시고 우리를 보살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위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첫째 위로란 무엇입니까?
2. 둘째, 그 위로에는 어떤 부분들이 있습니까?
3. 셋째, 그런데 어째서 오직 그것만이 견고하고 확실합니까?
4. 그리고 어째서 그 위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5. 끝으로 그 위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합니까?
Ⅰ. 위로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선의 상태>로 존재할 때 도덕적 피조물로서 창조의 목적대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함>을 상실하거나 깨어진 상태로 타락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상태를 <악함>이라고 합니다. 결국 <악함>이 인간과 피조세계에 만연하여 있게 됨으로 인류가 죄와 비참함에 놓여있는데, 죄와 비참함은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 비참함을 누그러뜨리거나 인내할 수 있도록 해야만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가 되는 것이다. 아담(과 인류)가 타락하지 전에는 <선한>의 상태를 누릴 수 있었지만 타락 후 아담(과 인류)는 <악함>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인류는 <악함>의 발전과 극도의 <악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전적 무능의 존재 되었습니다. 이제 이 땅에는 스스로 <선한>을 찾을 수 없고, <선함>을 갈망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함>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악함>에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는 <선함>이 <악함>보다도 훨씬 크고 확실해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악함>이 죄와 영원한 죽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죄와 영원한 죽음을 능가하는 상태로 회복되어야만 위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악함>의 상태인 죄와 영원한 죽음을 능가는 <선함>을 우리는 최고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나름 <최고선>을 찾아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최고선(最高善)이 아니고서는 그 어떠한 <선함>으로도 그 <악함>을 치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죄와 영원한 죽음을 넘어설 수 있어야만 아담과 인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다. 이 진리를 제시하고,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과연 무엇이 <최고선>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을 <최고선>이러고 할 수 있습니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첫 문답에서 <최고선>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몸과 영혼이 모두 미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주께서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듯이 주는 나를 지켜주십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룹니다. 내가 주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감각적 쾌락, 스토아학파는 인간 정서의 적절한 통제와 중용, 그리고 덕의 습관에서, 플라톤학파는 관념(ideas),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덕의 실천에서, 끝으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명예나 부귀나 쾌락에서 자신의 <최고선>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 모드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이요. 이미 이 땅에서 잃어버릴 것들입니다. 죽음에 이르면 모두 다 내려놓고 가야 할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하는 <최고선>은 절대로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최고선>을 집중합니다.
철학과 윤리적인 덕성이나 이단들의 소리들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사람을 위로할지 몰라도 결국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아담(과 인류)가 빠져 있는 죄와 영원한 죽음의 비참한 현실과 그 비참함의 근원 들춰내 밝혀주고, 거기로부터 우리가 도피할 유일한 피난처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만이 유일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그 위로를 먼저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도 영원히 견고한 위로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피 값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죄를 씻음과 하나님과 화목 되었습니다. 믿음은 이 확신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위로는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게 된 은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영원토록 구원받은 자들임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는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Ⅱ. 그 위로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입니다. 즉 우리가 자유를 잃은 노예로서의 소유물과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전에 우리는 마귀와 세상의 소유였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그분의 영원한 구속과 그분의 보살핌 속에 있다는 의모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말입니다.
2. 하나님과 화목 되는 방식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즉, 대속의 죽음)를 통한 것입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음으로 죄 값을 보상하셨습니다.(벧전1:18, 요일1:7)
우리가 죄와 사망의 비참한 처지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히2;14, 요일3;8)
3. 그리스도께서 구원 해 주신 모든 은택을 보존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것으로 감찰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4.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악들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로의 골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요. 또한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화목 되었으므로 아버지께 사랑을 받고, 구원받았으며, 성령과 영생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Ⅲ. 어째서 오직 이 위로만이 견고합니까?
오직 그 위로만이 견고하다는 것은 첫째로 오직 그것만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죽은 후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롬8:35) 둘째 오직 그것만이 사단의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이처럼 극심하고 위험한 갈등 속에서도 우리의 위로가 흔들림 없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와 그분이 베푸시는 모든 은택들이 내게도 해당됩니다.”라고 결론을 짓는 것입니다.
Ⅳ. 어째서 이런 위로들이 필요합니까?
이 위로가 우리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들어났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온갖 유혹과 갈등 속에서도 낙망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위함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해서도 이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와 내세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며, 다시 절망 속에 빠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견고한 위로와 더불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과 성도의 견인은 곧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십니다. 하지만 단순히 성도의 구원 자체만으로는 최종적인 목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되시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목적이며 창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Ⅴ. 그 위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합니까?
이에 대하여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2문에서 다룹니다.
2문 : 이러한 기쁜 위안 속에서 살고 죽기 위하여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의 죄와 그 비참이 얼마나 심각하며. 둘째 어떻게 그 죄와 비참에서 벗어나며, 셋째 어떻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인가 하는 일입니다.
이 질문은 요리문답 전체의 진술과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문답 전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를 제3문-제11문에서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죄와 비참함을 어디에서 압니까? 제 3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안다는 것은 제4-11문에서 배웁니다. 그러면 우리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있습니까?우리는 결코 못 지키며, 더욱 어기기만 합니다.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제12문-제85문입니다.
어떻게 이 형벌을 피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까? 제 12문에서 배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안 되고 중보자를 찾아야만 합니다.(제13-14문). 중보자는 누구입니까?(제15-19문) 중보자가 인류를 구원하는데, 참된 믿음으로 연합되어 그 모든 은택을 받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얻습니다.(제20문)
그렇다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에 대한 지식과 신뢰를 말합니다. 우선 그 지식은 사도신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제22-64문). 그 신앙 지식은 의를 얻게 하고, 영생의 상속자가 되게 해 주는데,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뤄집니다.(제59-64문) 이러한 신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설교와 성례와 권징으로 선물하여 주십니다.(제65-85문) 복음의 강해로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고, 성례의 시행으로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하며(제66-82문), 권징(제83-85문) 교회를 성결케 보존하십니다.
셋째,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제86-129문)
감사의 삶은 회개와 기도입니다.(제86-87문) 회개란?(제88-115문)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율법을 따라 <선함>을 발산하며 사는 것입니다.(제91-115문) 믿음의 순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순종이 없는 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기도란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주기도문에 담겨 있습니다.(제119-129문)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3문-11문 인류의 타락과 결과)
둘째, 너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12-85문,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86-129문,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중심으로)
본 강해는 하이델베르크 문답의 저자인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가 직접 쓴 <하이델베르크 요림문답 해설>을 참고하여 정리한 다음 묵상했던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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