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1:1-2)
1. (환란과 시련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1. 어떻게 복음으로 이 어려움을 이기는가?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리스도인답게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서신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때, 성경교리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는 서신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그 방법 말입니다. 여기서 그 방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으로 베푸실 때 충분히 알게 됩니다. 결국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변 세상에 큰 영향과 감화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여기서 자신의 삶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어려움을 복음으로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런 의도로 이 본문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2. 승리의 삶은 복음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사도가 주고 있는 실제적인 도움과 격려는 한 결 같이 교리를 토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성경적 원리를 확정한 다음에 그것에서 위로와 평안을 이끌어냅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나 부흥의 시대에는 승리의 기쁨이 확실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예배나 찬송에서 묻어납니다. 거기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시대였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주셔서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의 생각과 삶을 갱신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왜 이렇게 기쁨도 없고, 승리의 영도 없는 것일까요? 그 유일하고 확실한 대답은, “복음의 토대”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데에서는 참된 위로와 승리하는 삶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위대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반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기반을 잃은 곳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각과 세상의 소리에 그 토대를 둡니다. 그러면 결코 이 세상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1.3.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서신도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한 서신입니다. 물론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해당 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은 보편적으로 복음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요건을 알지 못하면 이 서신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먼저 우리는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난 왜 이렇게 불행한가?” “도대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분명한 대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되어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모든 유익한 것들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2.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2.1. 첫째,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엡 1:7절에서 “...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놀라운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2.1.1. 그러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아무 공로 없이 받은 은총입니다. 죄악 중에 출생한 허다한 사람들 중에서 그들을 특별한 은총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 너희만 알았나니”(암3:2)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모를리 없으십니다. 모든 이들과 일들을 다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상한 은총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총을 내리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성애로 굽어 살피셨습니다. 공로 없는 죄인을 굽어보시고, 특별한 축복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2.1.2.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시편34편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친다.”(7절) 라고 말합니다. 그들과 관례를 맺고, 특별히 지키시며, 주목하셔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고, 당황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 놀라운 경지에 이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인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위에 두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든, 어디로 가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우리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성경이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바입니다. 사도는 이 사실을 설의법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2.2. 두 번째, 요점은 그리스도인은 "성도"(saint)라는 말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성도라는 칭호를 오직 '성인'과 같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규정합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말입니다. 평신도 외에 특별한 성도가 있다는 인식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사도는 “모든 성도”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 이라고 호칭합니다. 성도들부터 언급하고 난 다음, 감독과 집사를 언급합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별도의 그리스도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모든 평범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서 성도라고 부릅니다.
동시에 성도는 세상에서 따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한 사람들은 모두가 거룩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따로 취하여 내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구별하신 사람들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내시고, 구별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근본 사상입니다.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셨던 것입니다.(갈1:4)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 즉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48번 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말은 50회 나옵니다. 왜 이런 표현이 중요합니까? 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바울의 서신도 없습니다. 복음은 모호하거나 세상의 그 어떤 것들과 같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중심입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시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는 결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결론과 적용
여러분 자신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까? 자신이 성도임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생명 안에 있습니다. 본 서신이 지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 은혜와 평강이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빕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을 이기며 은혜와 평강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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