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랑과 지식의 균형을 이뤄야하는가?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들어가는 말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느낌으로 기도하지 않고, 목회자의 안목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면서 무엇이 그들에게 중요한지를 언급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사도의 기도에 따르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지혜와 건전한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로서 사도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사도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특별히 그 사랑에 "지식과 모든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의 기도에는 항상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훈과 유익한 교리”가 가득합니다.
1.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
1.1. 6절과 충돌되는 내용 아닌가?
우리에게 의문이 드는 대목이 본문에 있습니다. 빌 1:6절에서 "너희(성도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도가 무엇인가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셔서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9-10절)는 성도들이 갖춰야 할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스스로 성장되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것이라면서 도대체 왜 무엇인가를 간구해야만 할까? 사도는 여기서 성도들이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이해력과 함께 지식에서 자라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셨고,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에는 완성하실 것입니다.(6절) 그런데 왜 사도는 다기 간구하고 있습니까? 사도는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할일”을 동시에 간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1.2. 하나님이 행하시고, 우리에게 행하하고 요구하심
이와 흡사한 구절이 빌립보서 2장에도 등장합니다. 빌 2:12절입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신다."고 6절에서 이미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도들이 스스로 이루어가야 할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충돌하는 듯합니다. 성경의 이런 교훈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각각 한 쪽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분쟁의 요소를 만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양쪽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하심”과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을 성경은 동시에 언급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행하심으로써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내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빌2:13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심”과 “우리가 행해야할 일”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먼저 우리 안에서 행하셔서 우리가 순종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논리를 잘 포착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1.3. 사도의 간구에서 그 두 가지를 상기(想起)시킴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우리가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런 다음 우리에게 행하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행동으로 우리의 행동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우리의 노력과 행동으로 지속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할 때,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이럴 말씀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무엇인가를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도의 간구에는 그 무엇을 상기(想起)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간구에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동시에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사도는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가?
2.1. 두 가지의 균형
성도들에게 있어서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9)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기도를 드리는 이유이며, 간구의 목적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성도들이 “단순한 사랑만 풍성해지기”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이미 있는 사랑에 “지식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사랑과 지식이 균형 있게 갖춰져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1.1. 믿음에서 나온 "그 사랑"
기독교의 사랑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그 참된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교육으로 성취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믿음이란 가르쳐서 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그 사랑”이 나옵니다. 사실 “그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참된 지식은 “그 사랑”에 기초하여 점점 성장하는 것입니다.
2.1.2 사랑과 지식의 균형
동시에 믿음에서 나온 "그 사랑"은 "그 지식"으로 통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없는 사랑"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를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사이비나 이단에 속한 자들의 열정은 바로 이 문제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그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자라나고,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사랑"과 "그 지식"은 항상 함께 가야만하는 것입니다. 고전 8:1절입니다.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그 참된 사랑"이 없는 지식은 자신을 언제나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없는 사랑"은 온갖 혼란과 무질서, 파괴적인 열정만을 만들 뿐입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의 열정이 그와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처럼 "사랑과 지식"의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한 것입니다.
2.2. 우리가 경계해야 것은 무엇입니까?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본문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2.2.1. 첫째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 순전히 자신의 체험과 감정에만 의존하는 것
순전히 자신의 체험과 감정에만 의존하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리나 가르침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즐겁고, 좋은 감정만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도 서로의 체험과 간증을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각자 자기들의 이야기만을 말합니다. 그 이상 (하나님의 일)은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것은 “나름대로 사랑의 분위기”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의 일을 아는 데)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즉 진리와 성령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말씀하심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역에서만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현대복음주의 교회 내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2.2.2 둘째, 주의해야 할 것은? 이론적이고, 추상적이고, 학문적으로만 교리를 접근하는 태도
정 반대의 유혹이 있습니다. 순전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이고, 학문적으로만 교리를 접근하는 태도입니다. 무미건조한 신학적 입씨름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인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단지 이론적으로 접근하여 지식만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단지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2.2.3. 사랑과 지식의 균형을 이루라.
이 두 가지 유혹을 피하려면 "우리는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영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단지 지적으로만 갖춘 지식이 아닙니다. 사도가 말하는 지식은 1)"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2)"기독교의 진리", 3)"계시의 전체적인 내용과 그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균형을 잃습니다. 항상 비틀거리기 일쑤이며, 사람들에게 눌리고, 현상과 상황에 짓눌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과 "그 지식"에서 철저히 균형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3.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하셨는가?
3.1. 은혜로 주신 것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1)"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2)"구원을 이루시는 일들"이며, 3)"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율법을 아는 것"입니다. 4)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아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능력과 의미를 이해하고 아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즉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정하신 계획을 확실히 이루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 깨달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큰 구원을 확신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사랑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단지 감성적으로만 알게 되면, 어떤 상황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경험되어야 하고, 전인격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3.2. 성령을 주심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성령을 받음으로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고전 2:12절 상반 절입니다.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고전 2:12절 하반 절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즉 우리에게 성령으로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 진리를 아는 지식과 함께 믿음과 사랑의 성숙을 이루게 되면, 그 어떤 상황도 이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기는 힘이 여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고 믿게 되면, 나의 상황이나 느낌과 상관없이 현재 내가 있는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알게 되며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깊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커집니다. 그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다른 성도에 대한 사랑도 성숙할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오늘 우리는 사도가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생각 해 보았습니다. 사랑 위에 지식과 모든 총명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사랑”을 기반으로 성숙하려면, 우리는 진리를 아는 데서 늘 나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견고한 신앙의 길을 가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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