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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새벽설교 시리즈

(빌립보서 새벽설교 06) 시련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답하는가?

by 인천열린 2023. 5. 2.

빌립보서 새벽설교 06 (빌1:12-14)(▶동영상)  

시련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답하는가?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 시련 속에서 위로하는 사도

 
1.1. 감옥소의 상황
 
에바브라 디도에 의하여 바울의 상황을 성도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가 갇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 전도가 멈춘 것 같았습니다. 계획한 일들이 모두가 허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날이 다시 올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 대부분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1.2. 승리하고 있는 사도
 
교도소에 갇혀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군사들이나 교도관들, 특히 황제의 시위대가 특별한 경계를 해가면서 바울은 자유스럽지 못했습니다. 가택 연금이나 아니면 묶인 채로 감옥소에 있었을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군사들에 의하여 모욕적으로 취급당하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시련을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 안에서 인내하였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원리로 인내했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모두 주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1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을 안다.” 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다스리시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상황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이겨낸 것입니다.
 
사도는 그 어두운 상황에서도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기뻤고,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같은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본문은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당한 일로 인하여 오히려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복음전도가 더욱 진전되고 있습니다.”
 
 

2. 일반적으로 시련에 대한 성경의 대답

 
2.1. 세상에 줄 수 있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세상은 이럴 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일을 주시는가?”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라고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 불평과 함께 원망합니다. 분노와 깊은 상심을 품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이게 세상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그래서 항상 어려운 시대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등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역사상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상황이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세상에 줄 수 있는 기독교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2. 성경의 대답
 
2.2.1. 첫째, 성경은 고난과 시련에 각각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가령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왜 우리에게 오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고통을 허용하시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성경의 대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성경의 대답을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성경은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시련과 고난의 삶과 상황들을 우리가 직접 살게 하십니다. 고난에 대해 성경은 그렇게 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건건 마다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문제에 하나하나 답하지 않고, 그러면서 고난과 시련을 온 삶으로 겪으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2.2. 둘째, 성경은 일종의 원리를 제공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주시는 대답은 일종의 원칙을 제공하십니다. "기본적인 원리"를 제공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제공하십니다. “진리가 여기 있다. 그러니 이 진리를 너희 문제에 적용해 보아라. 그리고 생각해보라.” 이것이 성경의 방법이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원칙입니다. 직접 그 고난을 경험하게 하시면서 “그 고난 속에서 주시는 해결 방식”을 제공하십니다. 이처럼 성경은 복잡한 인생의 문제들에 하나하나 답하지 않지만,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 삶에 충분한 답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2.2.3. 셋째, 성경은 그 일을 우리가 수용하여 살며, 경험하여 알게 하는 방식입니다.
 
삶에서 직접 우리가 풀 수 없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안고 우리가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그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품고 살 때, 살아가는 데서 훈련되고, 무지한 상태에서 새롭게 깨닫게 되고, 우리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며, 그 상황에서 선악을 구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다각도로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창조주의 손 안에 모든 것들이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게 하십니다.
 

 

3. 발생한 문제보다도 그 문제를 보는 우리의 태도가 중요함

 
3.1. 그 문제 자체보다는 그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
 
하나님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주어지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삶의 원리와 원칙”을 항상 곁에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태도와 관점”이 중요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시는 원리와 원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한 태도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발생한 문제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발생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 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도가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확신한 것입니다. 이런 태도입니다.
 
우리 삶에서 어려운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의 관점,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2. 주님과 제자들의 관점의 차이
 
이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9장 2-3절을 봅시다.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제자들은 어떤 관점이었습니까? 그들은 누구의 탓을 찾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탓하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을 나타내실까?” 라는 관점으로 보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고 계시는지, 정말 놀라운 관점입니다.
 
 

4. 올바른 태도를 갖기 위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바울의 말에서 보듯이 그는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어떤 의구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의심할 수 없이 선하게 이루실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 것입니다.
 
 
4.1.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견고한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도 틈타지 못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났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그 사랑이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인생관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역경을 딛고 승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곧바로 곁길로 떨어집니다. 절대 조심해야 할 지점이 이 지점입니다. 사도는 로마서8:3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은 바울의 진술이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의 핵심진리입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고 구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으신 하나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사도가 의지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의지함으로써 우리가 안전케 됩니다.
 
 
4.2. 둘째, 자기 자신에 대해 바르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과 사명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
 
자신에 대해 이기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에 관심을 더 깊이 두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과거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는 자신에 대해 집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는 항상 자신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복음을 맡은 자로 삽니다. 이 교도소에 있음으로 복음전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건전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사역자로서 중요하다. 내 사명은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 있다.” 라고 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불안한 정신 상태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불행한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교도소에 갇혀 있지만 계속되는 복음전파의 상황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에 따라 더욱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감옥소 밖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바울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으로 더욱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는데, 이는 아주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4-15절입니다.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결론과 적용

 
그리스도인에게도 때로는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역경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다스려 일하심을 볼 수 있도록, 우리는 바른 태도로 그 모든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과 나 자신의 확실한 관계를 보게 됩니다. 나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지금 이 상황과 역경에서 나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전인격으로 경험시키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그렇게 상황을 보는 태도에서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항상 그렇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이 이런 관점, 이런 태도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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