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새벽설교 08
나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1. 고난과 시련 속에서 담대하고 거룩한 태도
1.1. 사도의 거룩한 태도 : 자신의 삶에 대해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1)
매우 중대한 말씀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자신의 경험과 실제적인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실제적인 삶과 경험을 주실 때는 누구나 거룩한 경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대하면서 두 가지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❶먼저는 "이 말씀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고, ❷그리고 "그것은 실제적으로 경험한 내용"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태도로 접근합시다.
1.2. 실제적인 삶에 대한 사도의 태도
“아무 일에든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기를…….”(20)
이것이 사도의 경험과 실제적인 삶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객관적인 내용이며 본문의 배경입니다. 염려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거룩한 삶의 경지를 보여준 사도의 담대한 태도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해서도 동일한 열정과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1.3. 사도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삶의 의미
“내게 사는 것인 그리스도니”(21a)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삶의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사도의 이와 같이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라고 선언한 데서 우리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도가 "실제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갔다."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생활"의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너의 삶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도에게 있어서 중심적인 삶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실제적인 삶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보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망이이었습니다.
2. 실제적인 삶의 고백,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고백
2.1. 우리에게 도전하는, 실제적인 삶의 고백
사람들은 인생을 논하지만, 정작 실제적인 삶 자체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 인생의 문제를 직면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주된 잘못이요, 우리의 잘못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21절은 아주 중요한 질문이며, 우리가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시금석입니다. 물론 이것은 불신자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 것입니다. 동시에 21절의 고백은 모든 신자에게 해당됩니다. 바울과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동일한 믿음과 한 성령 안에 사는 존재입니다. 다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의 이 신앙고백, 실제적인 삶의 고백이 우리들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1절은 그런 차원에서 매우 심각하게 우리를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1)
2.2. 사도처럼 실제적인 삶을 고백할 수 있는가?
바울을 우리와 다르게 성인의 반열에 올려두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같은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낮은 신앙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도는 우리와 다른 은사와 직분을 맡은 사람이지만, 우리와 같은 성도입니다. 우리도 이 사람(바울)처럼 "나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 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성도는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이 열정이 타오를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2.3. 그리스도에 대한 삶의 고백 : 사랑고백
그럴 때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위대한 일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몇 년을 더 살지 알 수 없지만, 당장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혹시 내가 언제 죽든지 결국은 다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니 현재나 미래의 내 삶은, 여전히 내게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도시는 것이다." 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곧 "그리스도는 그의 삶이고, 그의 삶은 곧 그리스도시다." 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곧 그 자신의 실제적인 삶" 이라는 말입니다. 실제적인 삶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고백입니다.
3. 삶이 무엇입니까?
3.1. 실제적인 삶에서 추구하는 것
여기서 삶의 의미는? 실제적인 삶의 가치입니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실제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 7가지의 인생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❶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말합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에 집중할 뿐입니다. 즐기는 것이 인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쾌락주의자들입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쾌락주의에 빠져 삽니다. ❷또 어떤 사람은, "인생을 잘 견디자." 라고 말합니다. 끝까지 참아내는 것,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여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치를 빛낸다고 봅니다. 꿋꿋하게 참아내고 견디는 것을 인생의 가치관으로 삼은 것입니다. 스토아주의자들의 태도입니다. ❸인생에 냉소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소망이 무너지는 곳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봤자 뭐해, 다 쓸데없어" 라는 식입니다. 냉소주의자들입니다. ❹신비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삶과 삶의 모든 불행은 결국 자신의 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몸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고, 몸에서 벗어남으로 구원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죽이는 일에 힘씁니다. 세상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합니다. 수동적으로 삽니다. 온전히 수동적으로 삽니다. ❺보통의 인생관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하는 일과 가정에 충실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종종 그런 것 자체가 삶이 되어 버린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을 상실하면 삶과 세계 전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 중에서 하나만 잃어도 삶의 토대가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❻인본주의 인생관도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생을 선을 행할 기회로 봅니다. 세상을 개선하고 세상의 상태를 향상시킬 기회를 인생으로 봅니다. ❼종교적인 인생관도 있습니다. 단지 종교를 가지고 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라 생각합니다. 성직자들이 가장 위험한 부분입니다.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면, 죽을 만큼 허무하게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인생관입니다. 삶이 그 일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3.2. 바울의 인생관
사도는 자신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관점은 타종교에서도 갖는 관점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즉 "성자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삶이 종교적인 관심사도 아니고, 종교 활동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삶은 곧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그를 지배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울의 삶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삶은 우리의 생각과 관심의 영역으로 이루어집니다. 삶의 목적이 있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그것에 쏟습니다. 사랑의 특징은 사랑하는 대상을 늘 향합니다.
결론과 적용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여러분은 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냅니까? 여러분의 실제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랑은 그 느낌과 강정을 표현합니다. 더 많이 알고,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였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 느낌과 이 충동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집중된 것입니다. 그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활동과 행동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시간을 씁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파하는 데에 데 자신을 허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했고, 그리스도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채워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분 안에서 그는 삶의 평안과 기쁨을 찾았던 것입니다. 행복을 그분에게서 찾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라는 말에 담긴 의미 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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