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빌1:25-27)
1. 교리와 생활에 적용
1.1. 앞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음
사도는 지금까지 성도들을 안심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행해 보이던 상황이 이제 하나님의 축복으로 변화된 것을 놀랍게 보여줍니다. 사도는 자신의 투옥으로 좌절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더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복음이 더욱 지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깊은 깨달음도 가졌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
1.2. 진리(교리)를 먼저 말하고, 생활을 권면
본문에서 사도가 권면하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 여기서 사도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사도는 이처럼 항상 교리를 먼저 말하고, 그런 다음 "실제적인 권면"을 말합니다. 실제적인 호소를 하기 전에 사도는 언제나 "진리의 토대"를 단단하게 닦아 놓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특징입니다. 성도들도 같은 관점으로 "삶과 죽음"을 바라볼 것도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삶에서 죽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먼저 "진리"를 생각합니다. 즉 "삶과 죽음의 관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는 실제 우리의 생활과 매일의 행동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항상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신약 성경이 전체적으로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1.3. 복음에 지대한 관심과 삶을 살다.
사도는 복음에 관심을 쏟습니다. 복음에 견고한 토대를 놓고, 그 복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는 그것을 권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 만큼 복음을 완벽하게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세상에 기독교를 확신시켰습니다. 사도행전이 그런 실례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삶과 증언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대체 이들이 지닌 게 뭐지" "대체 뭤때문에 저렇게 살고 죽을 수 있지?" 라고 말입니다. 그런 질문에 삶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생활로 답했던 것입니다.
2. 생활을 권면하는 원리
사도가 어떻게 이 주제에 접근합니까?
2.1. 사도는 행동보다 교리를 앞세웁니다.
행동은 믿음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행동 자체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의 원리는 항상 믿음과 믿음의 결과인 삶을 말하는 원리를 갖췄습니다. 그러니 불신자에게 권면하는 사도가 권면할 리가 없습니다. 불신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심지어 우리도 이 전에 불신자들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디도서 3:3절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시편 기자는 "죄악 중에서 출생" 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시51:5) 비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없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믿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사도는 놓치지 않습니다.
2.2. 신약성경은 불신자에게 권면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이 불신자에게 말하는 것은 단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일깨운 다음, 구원의 복음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믿고 난 다음, 비로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바울이 '삶과 죽음'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을 밝힌 다음, 이 생활에 대해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기독교는 도덕률을 주는 종교가 아님
기독교는 단순한 도덕률이나 도덕법도 아닙니다. 복음은 십계명을 구약성경과 다른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십계명은 법이요, 도덕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법의 특징입니다. 법은 우리를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엇은 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더 높은 차원에서 호소합니다. 명령하는 대신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자리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먼저 교리를 제시하고, "그러므로..." 라는 말로 권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행동은 삶의 결과물입니다. 어떤 삶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른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그 진리에 의해서 삶을 삽니다.
2.4. 신약성경은 원리를 제공함
신약성경은 전체적으로 볼 때, 세세한 규칙을 주지 않습니다. 어떤 삶의 목록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커다란 원리를 줍니다. 원리를 제시하고 그 원리를 따라 살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도 "도덕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구약 성경처럼 규칙과 규범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원칙을 제시하고, 중대한 교리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시합니다. 교리를 가르치고 난 다음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커다란 원리를 제시받고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 원리에 입각한 실천이 나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3.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
3.1. 복음에 합당하게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너희를 볼 수 있는리 모르겠다... 한 가지만 기억하라... 너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라고 말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렇게 행동할 목록을 제시하지 않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따라, 어울리게 살라는 전체적인 호소요 권면입니다.
"합당하게..."(ἀξίως 악시오스)
"합당하게"라는 이 용어는 옷 차림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합당한 옷차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당하지 않는 옷차림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입어야 할 옷차림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도에 맞는 특징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복음을 주장했으니 복음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처하는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2.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2.1. 천국이 시민답게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삶과 행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제국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천국의 시민들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으나, 천국이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독특한 사람들이요, 구별된 백성들임을 무엇보다도 기억해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의 백성 삼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디도서2:14절에 의하면,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고 주님이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3.2.2. 복음에 손색없이 시민권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가 어떤 교리, 우리가 어떤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는 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신자들이 자신의 삶이 무엇이 다르고, 자신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이 붙잡은 교리, 그 진리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을까? 이런 의문을 품게 하고, 우리를 삶으로 나타내어, 중생과 새로운 본질에 대한 교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성령과 성령의 능력, 그리고 성령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이 능력은 우리의 죄책만이 아니라 어두움의 권세어도 구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이길 힘과 죄에 대항할 수 있는 권세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교리를 믿는 자로서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벧후1:3:)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과 그 복음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다스리는 생활과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 삶이 복음의 능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론에 붙잡힌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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