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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후서 설교 05) 경건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by 인천열린 2023. 6. 4.

벧후 1장 5-7절 주전20230604

 

경건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8)
 
 
 

들어가는 말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모든 관계의 차원을 생각해 봅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피고, 그런 다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있는 이웃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 이 전과 이 후에 달라진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경건(εσέβεια 유세베이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함,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 여호와를 경외함-사11:2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행3:12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6-7)
 
 
1.1. 기독교의 참된 경건을 어디에서 오는가?
 
베드로의 경험으로 볼 때 기독교의 참된 경건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베드로의 경험과 그의 증언에서 확인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서신의 저자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의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예루살렘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분명 사도들과 베드로는 성령강림 이 전의 상황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성전출입구에는 날마다 구걸하던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달라는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
 
이 외침과 함께 그 병인은 곧바로 일어나 뛰어 서서 베드로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고 주목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매우 흥분된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 때였습니다. 베드로가 외쳐서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3:12)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6)
 
베드로는 그 때에 자신의 개인의 권능과 경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말함으로써 경건이 베드로에게 있어서 어디로부터 왔는지 밝혀줍니다. 베드로의 경건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이 경건,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신앙심이요, 삶의 전반에서 나타나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근원지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흥분된 군중들에게 곧바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선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새롭게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큰 부흥의 중심에서 주님을 섬겼던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과 인격의 중심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경건, 그 믿음이 있었다는 베드로 자신의 증언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1.2. 하나님과의 관계의 차원으로 본 “경건”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모든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1:18) 라고 말하면서 바울은 그 원인이 먼저 사람들의 “불의함”(즉, 도덕적인 타락상)보다도,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된 것은 “경건치 않음”(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옳은 관계를 갖지 못함)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선언이요,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타락상을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신약성경의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옳지 않음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음”에서 도덕적 타락상(곧, 불의)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참된 경건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불러일으켜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며,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우선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래서 이 특별히 경건을 먼저 언급하였던 것입니다. “형제우애”로 표현된 모든 인간관계 앞에 “경건”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도는 인내의 신앙에 경건을 덧붙여서 우리로 하여금 힘써 더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 마음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우리는 오래 참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성품의 발전을 위한 일들이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성품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성품을 훈련하는 일에 너무 귀중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우리는 경건을 잃게 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사실상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모든 관계들 가운데 경건을 먼저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베드로 자신의 경험과 깊은 깨달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1.3. 베드로의 삶의 친절한 가르침에서 배움
 
덕(5절)으로 표현된 “용맹스러움과 활기찬 믿음”에는 올바른 지식이 갖춰져야만 바른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자신의 정욕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에 “절제(self-control)”를 믿음에 더하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일 아닐까요? 오순절 성령감림 이 전에는 베드로에게는 self-control 이라는 차원에서 여러분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베드로의 실패는 self-control 이었습니다.(마16:22-23,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는 장면에서 보여준 절제 없음과 무지함) 그러나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 후에는 베드로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담대하라고, 끝까지 인내하며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주님을 따라 죽기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됩니다. 이처럼 성령의 충만한 믿음으로 본 서신을 쓰기까지 기독교의 믿음에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아주 실감나게 경험한 것입니다. “믿음에 덕,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힘써 알고 구했을 것이며, 성령의 놀라운 열매의 결실을 친히 경험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경건을 말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일들이 있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을 중심에서 신적인 두려움과 떨림에서 흘러나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의 깊은 깨달음과 경험에서 친절하게 배우게 됩니다.
 
 
 
 

2.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2.1. 형제우애(φιλαδελφία 형제에 대한 사랑)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7)
 
이처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기반으로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주님의 생애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무엇을 강하게 가르침 받았습니까? 이것은 요한 사도의 증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형제우애는 참으로 가장 뚜렷한 제자들 간의 특징이었습니다. 요13:34-35절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형제 사랑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시기를 바라는 데서 왔느냐? 이것은 중요하게 그 사랑의 동기와 목적을 제대로 품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한 말씀입니다. 형제가의 서로 사랑함과 동시에 서로를 위하여 참아내야 할 것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훨씬 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 번 실망하면 더욱 참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보다 더욱 참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사람에게 과도하게 기대하면 필연코 시험이 찾아듭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것을 봅니다. 우리는 먼저 경건이라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와 함께 끝까지 인내하며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2. 그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하라
 
형제사랑의 부족함이나 실패는 교회에 언제나 해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마침내 사도는 형제우애를 말하고, 곧바로 그 모든 일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린도전서 13장을 읽고 그 사랑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고전13:4-7절입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베드로는 여기서 그 모든 삶, 믿음의 삶에 사랑이 다스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셨습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베풀어져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마5:44-45절입니다.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달랐던 사람입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요18:10) 이처럼 원수를 경멸의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매우 많았던 유대인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이 후에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놀라운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죽인 무리들에게 형제들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힘써서 ... 사랑으로 더하라.”라는 베드로의 가르침은 이런 변화를 통해서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믿음의 삶에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다스려지고, 최후에는 사랑으로 성취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이유와 능력의 근원지를 하나님 사랑에서 찾으라고 하신 것입니다우리도 그 큰 사랑을 갖도록 합시다. 믿음으로 시작된 우리의 신앙은 사랑으로 결실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이제 우리는 이 7가지 자질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힘써서 공급하고, 특질들이 서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기업합시다. 각각 다른 것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하여 전체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이 목록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보다 조화롭고 질서 있는 삶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이성적이지만 도덕적으로 흠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도덕적으로 훌륭하지만 의지력이 매우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대단한 의지력이 있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각 특징이 서로 도움이 되지 않고, 각 성품들이 각각 나뉘어져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 외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이와 같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합니다.
 
모든 구성 성분은 결합되어 있고, 각각 그 구성 성분의 중요성도 있지만, 또한 각 구성 성분이 다른 것에도 도움을 주고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각각의 성품이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인의 생활을 위하여 완전한 조화와 질서를 갖춰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보배로운 믿음이 날마다 “정욕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고. 점점 신의 성품에 참여함으로써 성장해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얻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행하며, 반드시 그 모든 일이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비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벧후1:3)”을 주십니다. 보배로운 믿음에 기대하셨던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모두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