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1장8절 주전20230611
왜 우리는 실천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
들어가는 말
오늘은 8절을 중심으로 우리는 왜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8절입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8절) 이 내용으로 오늘은 우리 삶에 마음을 다하는 삶과 실천적 신앙생활에 대해 함께 살펴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1.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가라.
1.1.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
구원을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측면에서는, 택하신 백성을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하셨고, 둘째,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측면에서는, 그 구원은 계속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셋째 영화(榮化 glorification)의 측면에서는 언젠가는 그 구원이 완성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신자들은 세 가지의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면에서는 성화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요, 언젠가는 그 구원이 완전히 완성되어 영원히 영광스러운 백성들로 변화될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성될 구원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베드로는 이 구원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베드로에 의하면 신자들은 이미 “보배로운 믿음”(1:1)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함께 무엇인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1:3)입니다. 본문의 문맥에서 꼭 인식하고 있어야 할 내용들입니다. 이미 믿음을 주셨고, 기독교인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시작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 노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며, 그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우리가 구원받은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누리면서 실제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새로운 믿음으로 사는 것,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충분히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무엇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경험되면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알고 누리면서 사는 것은, 구원받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영원한 사망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아지 못하는 영혼의 사실상 죽음 상태와 무서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 사망에서 우리를 살리신 상태가 “새로운 생명”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도록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신자에게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기초입니다.
1.2.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것은 그런 삶을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여기서 넌지시 권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누리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개념만 붙잡고서 자신의 신앙을 “관념”에 가두고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신앙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실상 이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진리는 지성적으로 깨달았다고 해서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 진리를 마음에 품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정하게 입술로 신앙을 고백할지 몰라도, 하나님께 대해 우리의 마음이 없으면 실천적으로는 살지 못하고 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 사도가 걱정하는 핵심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15:8절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고백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러진 것입니다. 그런 삶이 하나님께 대한 공경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천적 무신론”의 결정적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런 “실천적 무신론”은 신앙과 행위의 불리일치를 발생시킵니다.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불신앙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을 고백한다고는 말하지만, 실상은 살지 않음으로 인하여 결정적으로 “실천적 무신론”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한 주간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주일에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고, 헌금을 할지라도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증거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생명과 경건’에 속한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따라 실천적으로 발휘해야 합니다.
1.3. 정욕을 피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앙생활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곧바로 우리를 실천적인 경지로 이끌고 있습니다. 4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라.”(1:4) 또 사도는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당부합니까?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1:4) 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거스르는 정욕과 싸워야 하고, 과감히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실천적으로 해야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정욕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피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여러분, 매순간 생각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생활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십시오.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양심, 여러분의 말과 글에서 주님을 닮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실천적인 믿음, 순종하는 삶을 살아있는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진리를 소우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대해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경외하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8절을 중심으로 왜 우리는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 성도는 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가?
2.1. 만족스럽게 점점 성장하는가?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8절)
2.1.1.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8절) 8절에서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은, 5-7절에 언급된 7가지의 덕목들이 각 성도들에게 속하여서 성도들의 소관에 맡겨진 것입니다. 즉 이것들은 성도들의 책임과 권한에 두신 7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이면서 동시에 성도들의 책임과 권한에 두신 것들입니다. “흡족한즉” 이 말에는 점점 증가하여 만족스럽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이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한 순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각자의 신앙이 성숙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땅한 것입니다.
2.1.2.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과 7가지 덕목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여기 여기서 ”게으르지 않고” 라는 말은(아르고스) “일이 없다. 소용없는, 무익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다.” 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모든 덕목들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7가지의 덕목에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모든 힘과 능력, 빛을 발하는 원천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덕목들이 생명력을 품고 발산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천적으로 그 7가지 덕목을 실행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 주님을 믿는다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그 믿음의 생명이 자라가도록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힘써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2. 왜 이렇게 실천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울까?
우리가 까자 믿고 있다고 말하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하고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것을 매우 실천적으로 행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모임이나 세상의 어떤 동아리에서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그 어떤 일이든 매우 열심히 실천적으로 행동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일에서는 실제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영적인 싸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려고 해도 “자신 안에 정욕의 썩어질 것”에 의해서 늘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영적이 싸움이 여기에 개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이를 실천적으로 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늘 “영적인 게으름”에 휘말려 있기 쉽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하는 마음은 결코 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 했습니다. 영적인 싸움의 중심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2.2.1. 승리하기 위해서 마음을 쏟으라.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졌다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한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생활입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입니까? 우리의 관심과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야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말씀을 달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를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2.2.2. 하나님의 구원을 제대로 알고, 그 진리를 따라 실천하라
성도는 우리는 기계적으로 무엇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왜 우리가 행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벧후1:1)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와 섭리, 구원과 구원의 완성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든 일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을 스스로 일으켜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빌2:13)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입고 삽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다 뜻을 주셔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았고, 하신 일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가장 확실한 신뢰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실천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2.3. 죄의 틈새를 허용하지 말라
이제 우리는 내려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게으른 신앙생활로 무가치한 삶으로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를 넘어뜨리는 죄악의 틈새를 허용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실천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활동으로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고 실천하기 위해서 마땅한 지식에 관심도 갖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절제와 질서를 갖춰야 합니다. 무절제한 믿음생활은 그것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넘어뜨리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모자라겠지만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오래 참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오래 참으신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갖춰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경건과 형제우애,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야 할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힘써서 실천합시다.
결론과 적용
우리의 믿음은 점점 자라가야 할 믿음입니다. 베드로가 이 서신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사랑으로 구원하셨는지를 아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겨워서 실천적인 삶으로 나아갑니다. 실천적인 신앙의 또 다른 출발점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대신에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정욕에 끌려 이 세상에 다 내어주고, 겨우 형식적인 종교의 외향만 가지고 나아가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런 의심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으로 달려갑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그렇게 살이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원망 다음에는 하나님의 향하심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할 때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으십시오. 나의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그리스도 앞에 굴복시키십시오.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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