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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가?

by 인천열린 2023. 2. 19.

마 11장 27절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 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가?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들어가는 말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을 그렇게 알고 있는 것"에 속합니다. 결국 신약성경은 그런 사람들의 주장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시식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런 차원에서 가장 중대한 말씀에 속합니다.

 

 

1.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신 유일한 통로 : 예수 그리스도

 

1.1.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오늘 말씀은 매우 중요하게 진술되었습니다. 사실상 신약 성경의 메시지를 압축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의 원칙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왜 사람들이 기독교의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까? 무엇때문에 참된 기독교의 길에서 벗어납니까? 그 원인 바로 오늘 말씀과 같은 가르침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첫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입니다.?" 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 자기 계시를 어떻게 하셨는가?"입니다.?" 입니다. 이에 대한 신약성경의 대답은 아주 확실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의도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아들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1.2. 집중해야 할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 땅에 행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복음"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쁜 소식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행하신 일, 복음이 필요합니까?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주셔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주셔야만 했습니다. 고전 1: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성경은 이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인가 행하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제일 먼저 집중해야 할 것은 (1)첫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2)둘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1.3.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아신다."는 뜻은?

 

복음에 집중해야 할 핵심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십시오.

 

" ...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만 소유하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주님처럼 알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유일하게 아신자는 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신 것은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본문의 주장은 (1) 주님만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계신다는 것과 (2)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다음과 같이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것이 신약성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말씀인즉, 오직 주님께서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참되게 알고 계시며,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만이 참되게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통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대 선포입니다.

 

 

2. 오해된 예수 그리스도

 

2.1. 예수께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는 대략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무엇에 대한 오해들입니까?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오셨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평화를 위하여 오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철학과 인간 사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예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뛰어난 생각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서 세상에 계속적으로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들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도 주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잘 가르쳐서 그 교훈대로 살고,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2)둘째,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선한 삶을 위해 도덕적인 면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정치나 사회 개혁보다는 예수님을 "도덕적 개혁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삶"을 가르쳐 주고 예수님 자신의 생애를 하나의 모범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도덕적인 교사" "도덕적인 혁명가"로 생각하고 그분의 도덕적인 모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어떤 "위로가 되는 말씀""위로가 되는 체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비한 체험도 주시고, 종교적으로 매우 뛰어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이 세상이 낳은 가장 종교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어떻게 알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의를 갖추는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대충 하나님이라고 인정해 드리는 것으로 그들은 만족합니다. 그들에게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좀 더 나은 삶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2. 신약성경의 주장(1)

 

하지만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왜곡되고, 전혀 오해된 상태로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철저히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부분에서 넘어진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만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 부분에서 실족했습니다.

 

주님의 탄생 목적이 그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본문에서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반적인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의 파편적인 일들입니다. 핵심을 벗어난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이 바로 그것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셔서 이루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주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유익한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신자의 목표가 아닙니다. 선한 삶이 있을 수 있고, 신비한 체험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의 중심적인 목적과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아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2.3. 성경의 주장(2) : 주님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또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 즉 주님 외에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주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독단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매우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주님의 주장 중에서도 매우 위대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의 주장은 너무도 단언적입니다. 너무도 절대적인 주장을 하시고 계십니다.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고"

 

이 말씀은 그다음에 나오는 주님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4.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오해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문제"를 다루면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견디지 못하고 분노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이 항상 그러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더 이상 알 것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니까, 벌써 그들의 출발점이 잘못 된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좀 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종교적 체험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지점이 우리가 항상 넘어지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아주 철저하게 이 지점에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18절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분은 다시 하나님을 이 땅에 나타내셨습니다.("엑세게오마이").("엑세게오마이") 우리들이 오해하는 생각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다 알고 있고, 믿기 때문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고, 무한하십니다. 때문에 인간의 차원을 초월 해 계십니다. 17:25절입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을 알았삽나이다."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하나님을 알았던 적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고전 1:21절입니다."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들도 하나님을 아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일관된 선언입니다.

 

 

 

3.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

 

3.1. 하나님을 안다는 것 : 인격체로 친밀하게 앎

 

그러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은 이 세상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추론하는 데 그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뜻합니다. 아주 가깝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나사렛 예수를 아는 사람들이 당시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는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자들은 "하나님""우주의 보편적인 힘이나 세력"이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격체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등등의 이런 성경의 용어들이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 사도가 서신서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16) 성경에 두 번 진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사랑의 속성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이란 인격체로 존재해야 하고, 그 상대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께서 위격적 사랑으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간에 서로 영원한 사랑, 완전한 사랑을 누리셨다는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리사."는 표현을 사도가 사용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창조, 섭리, 구속의 역사에서 나타내 주셨습니다.

 

 

3.2. 친밀한 관계의 지식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매우 가깝게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서 아는 것입니다. 바울의 표현대로 말하면, "아바 아버지"(롬 8:15)로"(롬8:15) 부를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 확신과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확실한 임재를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하나님을 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을 압니다.

 

 

3.3.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를 차원으로 앎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자기들 편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판에서도 자기들을 알고 계신다는 확신과 믿음을 갖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매우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매 순간!" " 제 곁에 항상 계십시오! 하나님!" 이렇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실체와 그분의 임재를 압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상대하시고 계심을 압니다. 그분 자신의 방법으로 자기들의 삶을 세워 주시며, 자신들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모든 위기와 역경에서도 홀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과 영원하신 팔로 자신들을 붙잡고 계심을 압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세신 바 됨을 압니다. 이렇게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신약성경의 진술입니다. 증언입니다. 사도행전은 그 실제적인 경험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를 사도행전에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한 것을 보면 왕 앞에 바로 들어간 듯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들의 기도를 기꺼이 들으시고,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안다는 뜻입니다.

 

 

 

결론과 적용

 

여러분께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의미로 하나님을 아십니까?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살아있는 기도를 하십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체험은 너무도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셔서 "아바 아버지"라 친밀하게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하나님이 자신들의 도움자로 만 있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해 보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 사실도 싫어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이성, 명상, 선한 생활 기타 어떤 것들로도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참된 경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대 선포요, 위대한 진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