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스터디 26】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1. 본문의 취지는 무엇일까?
“이는”(왜냐하면, 이유와 동기) 라는 용어로 시작합니다. 그러면 사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절망적인 죄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행하셨습니다. 구원을 역사(役事)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셔서 새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늘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신 것입니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분이 향하신 동기가 무엇일까요? 엡 2:7절 첫머리에“이는”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고자 사도는 이 용어를 언급한 것입니다.
2. 우리의 구원은 제대로 인식되는 것이다.(내적, 주관적)
우리는 중생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바가 매우 드물고 희미하기 쉽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치와 신분”에 관한 완벽한 개념을 포착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진리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엡 2:7절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느낌과 체험, 그리고 우리 속에서 의식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관적인 요소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전체적인 지위가 매우 불확실할 것입니다. 내적으로, 주관적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시고, 확증하여 나타내 주십니다.
반면에 우리가 “객관적인 진리의 표현”을 확실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것만큼 우리의 복락에 매우 치명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이 참된 성경적인 개념”만을 잘 갖게 되면,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은 대부분 즉각적으로 멀리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3. 병적인 자기 관심에 대한 처방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이런 저런 일로 고통을 받습니다.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다루시며,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라고” 이상 해 합니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모든 고통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엡 2:7절은 “일종의 처방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자기 관심에 매이는 것과 같은 병적인 상태를 유발하는 “병적인 자기 관심에 대한 처방”입니다. 그런 병적인 상태에서 우리는 고개를 들어서 “하나님의 장엄한 목적과 계획” 속에서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본문을 여기에 기록한 이유인 것입니다.
4. 어째서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행하셨는가?
어째서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행하셨는가? 어째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이 일을 우리에게 행하시는가? 어째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는가? 거기에 대한 답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는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4.1. 첫째, 구원의 제일 되는 목적과 의도와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구원의 제일 되는 목적과 의도와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모든 세대에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것을 나타내어 주시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그 영광을 보는 모든 피조물 자신들에게도 유익하고, 하나님께서도 기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먼저 ‘객관적인 요소’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첫 번째 의도가 어떤 의미에서 우리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제1차적인1 의미에서는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4.2. 둘째, 구원은 다른 방식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은 아주 특수한 방식과 방법으로만 위대하심과 성품을 변호하십니다.
다음과 같은 의문은 늘 제기되어 왔습니다.
『어째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셨는가? 어째서 사람이 죄에 빠지도록 허용하셨는가? 하는 의문이 늘 제기되었습니다. 궁극적인 대답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의 영역을 초월합니다. 그것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인간이 죄를 범할)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전적으로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은 완전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인간은 실로 자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죄에 빠짐으로 인해서 그것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일부였습니다.』
어찌 됐든 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심으로써 자신의 거룩한 존재와 본질과 성품에 속한 어떤 속성들을 나타내어 드러내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만물을 지배하셨습니다. 아무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만일 사람이 그 방식대로 죄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긍휼에 있어서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여주시고,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만큼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하심”을 나타내는 그 어떤 방식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4.3. 셋째,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와 위대하심과 영광을 드러내시고, 변호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위대하심과 장엄하심을 우리를 통해서 우리를 방편으로 행하셔서 나타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하여” 구원을 우리에게 행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어떤 일에 의해서 자신의 거룩한 존재와 본성을 나타내어 변호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핵심적인 정신입니다.
결론과 적용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인 상태’와 ‘감정’과 ‘분위기’와 ‘지나가는 조건들’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도는 이제 밝혀진 위대한 비밀을 여기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고”(엡3:9)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변호하시고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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