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스터디 27】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kjv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들어가는 말
여기서 진술하는 복음은 신학적이거나 이론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는 목회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도와주려고 이 서신을 쓴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8-10절의 말씀을 보면, 8절은 ❶“긍정적인 진술”로 시작하고, 9절에서는 ❷“부정적인 방식”으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앞의 두 절을 ❸“결합하여 방식”으로 진술합니다.
1. 우리에게 구원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앞에서 언급된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엡 1:19절에서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하), 그리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그것은 ❶ “부르심의 소망”(18)과 ❷ “성도의 기업의 영광”(18), 그리고 ❸ “그리스도의 능력”(19)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펼쳐졌는지”를 말합니다. 엡 2:6-7절에서, 그것은 바로 ❶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❷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 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주시고, 부어주셨습니다.
2. 구원의 은혜에는 어떤 원리로 주어졌는가?
2.1. 첫 번째 원리,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8절)
죄와 하물로 죽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는 곧,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전적으로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생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상태였으니, 전적으로 우리는 무능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우리가 스스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하여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였고, “우리가 원수였을 때”였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8절의 뜻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2. 두 번째 원리, 우리 자신에게는 어떤 자랑거리도 제공되지 않는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9절)
2.2.1. 모든 자랑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게 될 때 죽습니다.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9)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가 구원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기준선입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중에 누군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9) 로마서 3장에서도 사도는 말합니다.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자신의 종교성이나 민족성, 그리고 도덕적인 차원에서도 그 누구보다 뛰어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회심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들을 뒤로 하면서 “그것은 배설물이요, 분토!”라고 말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비열하고 쓸모없는 것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우리의 전 존재의 자랑이 죽어지고, 겸손케 됩니다. 모든 자랑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게 될 때 죽습니다.
2.2.2.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돌리지 말라
우리는 믿음을 행위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믿음을 자신들의 행위로 돌립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제는 구약의 율법은 모두 한 쪽으로 밀어 붙이고, 더 이상 율법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 자신의 믿음 자체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을 자신의 행위로 돌려버리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다고 말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한 것이라고 말한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내게서 난 것”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내 믿음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이 나에게서 난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나에게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내 자랑은 완전히 배격해야 합니다.
2.2.3. 믿음은 구원의 원인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의 원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원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원인이지 믿음이 구원의 원인이 아닙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 구원이 나에게 이르는 통로에 불과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믿음은 통로요, 도구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난 이 구원이 나에게 미치는 그러한 수단인 것입니다. 나는 은혜로 주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생명 속에 들어오는 중계적인 역할과 매개체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구원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이 이루신 역사가 그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원리,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위요, 결과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절)
3.1. 우리 안에 역사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개념을 두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빈약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어떤 선행과 노력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소망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는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결정”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만드신바”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 일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사도는 다른 서신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주를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3.2. 어떤 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절)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목적으로 자기고 구원하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은 그것을 지향합니다. 율법의 정신은 그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진행하며, 거룩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지음을 받은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뤄집니까?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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