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새벽설교 67 (요일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들어가는 말
20. 지각을 주심 : (1) 참되신 예수 그리스도
(2) 우리가 그분께 속한 것
참 하나님, 영생이신 예수
21. 너희를 지켜, 우상을 멀리하라.
우리와 나 자신 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몰아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우리가 그 무엇인가를 두었다면, 우리는 이미 우상을 섬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를 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요일 1:2-3)을(요일1:2-3) 망가뜨리는 짓이며, 우리 마음은 이미 그것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바로 그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들도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있겠지만, 본문은 좀 더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인격에 어떤 형태로든 숨어 들어온 우상을 대상으로 신자는 경계해야 합니다. 요한 사도의 생애, 그 마지막 교훈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유언과 같은 그의 교훈인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누리시는 생명 : 사귐(Communion with God)
1.1 영원한 생명을 우리와 함께 누리시는 하나님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들 안에 계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와 그분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가까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히 불멸하는 생명으로, 우리와 함께 누리시기를 계획하시고 누림을 기뻐하십니다. 요한 사도는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합니다. 요한 사도는 이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아노라." 라고 확신에 찬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힌 그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귐에 그 어떤 것도 개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요한 사도가 여기서 특별히 강조합니다.
1.2. 사도가 소개하고 있는 영생
요한 사도가 영생의 본질로 소개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 사귐이야말로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2-3절입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3. 최 정점(예수 그리스도)에서 계시된 하나님
이처럼 요한일서는 나선형 계단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맨 꼭대기 계단에 이르러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그 나선형 계단의 최 정점에 계십니다. 마치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연상할 수 있는 그것과 같습니다.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참도신 하나님을 계시하신 최 정점에 께십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온전하게 참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계시하십니다.
2. 하나님과의 사귐 :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생명
2.1. 우리가 실제적으로 누리는 영생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신 참되시고 유일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전인격적으로 교제를 누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귐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친밀하십니다. 요한은 이를 실제적인 일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당신의 자녀들이 교제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며, 우리는 모두가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확신에 찬 강조점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또 그분 안에 거하게 된 것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2. 신자가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은?
그렇지만 우리가 누리는 영생을 통해서 어떤 무아지경에 빠지거나, 죄가 없는 상태를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만할 수 없고,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에 어떤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거짓된 것에 유혹을 받기 쉬운 존재가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마지막 유언과 같은 끝말에 우리 모든 신자가 경계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라는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사도는 이렇게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5:21)
2.3. 그리스도의 지키심과 우리의 책임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키십니다.(요일 5:18).(요일5:18) 그 능력은 우리가 우상을 멀리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능력과 우리의 책임이라는 조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방식으로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3.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3.1. 하나님 외에 우리의 전인격에 파고드는 것들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이나, 우리의 관심,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자리에 그 어떤 것을 두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집착하거나, 그런 형태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런 것들로 참 하나님을 흉내 내는 모조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 어떤 대용품일 뿐입니다.
물론 장인의 정교한 솜씨로 만들거나 제작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요한 사도가 경고하고 있는 것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잠식 해 들어오고 있는 "잘못된 하나님 개념들이나 생각들, 이단적인 개념들, 이교도의 신관들입니다.
3.2. 오늘날 강력하게 등장한 우상은 무엇인가?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경고받아야 할 것들입니다. 현대의 우상은 초대교회 시절보다도 더욱 노골적으로 등장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재물은 더욱 세련된 형태로 사람들이 추구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또는 권력, 사회적 지위, 성공, 명성, 등등을 추구하는 배후에는 그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하나님 자리에 올라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을 성공시킨 그 무엇인가를 자신들의 창조주로 섬기며, 앞으로도 자신들의 구원주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맹종합니다. 교회도 그런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우리의 영적인 삶을 침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의 영적인 삶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3. 왜, 어떻게 우상을 몰아내는가?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어내려는 것들은 무엇이든 우상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계시되셨습니다. 완전하게 들어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하신 것과 모순된 모든 신적 개념들은 제거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건전한 교훈에 귀 기울이고, 기독교적인 삶을 보호하며, 영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잘못된 목표와 관계를 반드시 끊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여전히 마귀가 불어넣어 주는 잘못된 교훈들로 침투합니다.
결론과 적용
그리스도인은 흔들림 없이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확신과 담대함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지켜서 우상을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임무수행이요, 마땅한 책임입니다. 이것은 참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귐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영생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양들이 생명과 풍성함을 위하여 오신 목적에 우리의 순종이 부합된 것이며,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축복을 누리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요한 사도는 마지막 유언처럼 신약성경 가장 마지막 순간에 기록했던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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