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5장18절 주전20230326 설교동영상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은 여러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성경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이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이지만 가장 큰 위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누구나 다 사실상 의지할 곳이 없는 존재가 이 땅의 인간들입니다. 가장 높은 경지에 있다고 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은 실상 가장 비참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등져버린 때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로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한, 어느 한 순간도 안전할 수 없고 불안을 떨칠 수 없습니다.
오늘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께서 우리를 지키시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그분은 어떤 분 입이십니까?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흔들리지 않는 확신, "우리가 아노라!"
1.1. 형제를 위한 기도요청
주일 광고에서 "교회의 지체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광고를 들을 때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졌습니까? 그 때마다 우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곤고한 가운데 있는 형제, 죄에 유혹을 받고 있는 지체, 시험에 들어 죄와 싸우기에 힘들어 하는 지체를 여러분 깊이 생각하고 주님께 진실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요한 사도는 에베소 지역에서 목회사역을 이어 갈 때, 무엇보다도 "형제를 위한 기도" 특히 구원받은 형제들 중에서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한 지체"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 요한일서 새벽설교 62번, 요일5:16-17절 설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 요일 5:18절에 도달했습니다. 내용인즉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법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18절 상반절)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8절, 하반절)
1.2. 사도의 확신과 단언, "우리가 아노라."
요한 사도는 아주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말합니다. 참된 신자에게 있는 확실한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18 상반부) 이것은 신자에게 있어서 아주 명백한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부정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그것을 아주 확실히 설정 해 둡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명제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공리(公理)"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가 여기서 강조합니다. 그런 다음 19절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너무도 확실하다는 것을 요한 사도는 “우리가 아노라.”(18) “또 우리가 나노니”(19) “또 아는 것은”(20) 이렇게 확실하게 변하지 않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참된 신자는 죄악된 상태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18 상반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참된 신자는 이전의 죄악된 상태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1.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라
요한 사도의 독특한 표현 방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논란이 되어 왔던 본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은 자주 왜곡된 말씀으로 오용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완전주의자들”에게 오용 되었습니다. 요일 3:9절과 함께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잘 못 사용된 것입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이 말씀은 요한 사도이 이 부분을 과거분사로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가 담기게 되었느냐면, “과거의 한 시점에서 시작된 관계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했습니다. “계속되고 있는 관계” 또는 “과거로부터 계속되는 상태” 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어는 시점에 우리가 각각 거듭났을 때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그 상태”가 지금도 계속 그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살아 있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적인 출생이든, 영적으로 거듭난 일이든 같은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문맥 속에서) 보아야만 합니다. 성경을 볼 때, 특정한 성경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서 이해하려고 하면 항상 해석의 오류를 낳게 됩니다. 그러기 쉽습니다. 성경은 66권이 하나의 통일체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참된 신자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1:10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오용하여 “완전한 성화론”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참된 신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이며, 그는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는 새로운 상태”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2. 위 해석은 어떤 의미로 이해됩니까?
요일 3:9절에서도 그렇듯이 요한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계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라는 것이죠. 계속 죄를 범하지 않는다. “계속 죄를 범하는 상태에 빠져 있지 않다.” 그런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의 관심은 “성도의 어떤 행위”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이후에 “성도는 새로운 상태”에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참된 신자는 (과거의 어떤 죄를) 계속적 범하는 그 죄악의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상태에 있습니다. 요일 5:19절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맥락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악한 자(사단)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신자는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 빠져서 지속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죄악 된 삶의 지속적인 상태에 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거룩한 상태요, 복된 상태“입니다. 이 구절을 고찰하는 방법은 그것을 두 가지의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어둠의 나라“이며, 그리고 또 하나는 ”빛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로 구별됩니다. 즉 ”마귀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로 나누어 생각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높여졌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높여졌습니다. 물론 때로는 그들이 죄 가운데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계속 "그 낮은 영역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이 이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은 삶의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 상태의 수준"과 "영적인 상태의 수준"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사람은 더 이상 "죄악된 상태의 수준"에서 살지 않습니다. 참된 신자는 "거룩하고 높은 상태의 수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죄악 된 곳에 쓰러져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상태는 높은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록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했을지라도 본래의 영역, 그리스도인 안에 누려야 할 영적인 경지로 돌아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역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은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사실을 이렇게 강력한 표현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노라” 사도는 명백한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3. 그리스도의 보호, 보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하반절)
3.1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여기서 나셨다는 동사는 “부정과거 분사”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NEB 주석에서는 “저를 지키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번역합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 번역본, 개역개정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나신 분"은 우리의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지키신다.”(τηρέω) 라는 말은 그분이 참된 신자들을 “보살피신다.” “보존하신다.(preserve, keep) 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또는 ”주시 하신다. 의도적으로 살피신다.“ 등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사도는 지금 누구에게 편지하고 있습니까?
시험과 시련을 당하는 에베소 지역과 초대교회 모든 신자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편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가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십니다. 누가복음22장 31-32절입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는 이 위대한 주님의 일화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도 적용된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맥락의 말씀이 요한복음 17장에 가득합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요17:11)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요한복음17:12,1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3.2. 위로와 격려의 말씀
이 말씀은 결국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에 이것은 공리(公理-누구나 다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에 속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붙잡고 계신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를 주목하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우리에게는 피할 길을 내어주십니다.(고전10:13) 우리는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죄악 속에 거하거나, 계속적으로 죄악 속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높은 차원의 상태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두시기 때문입니다.
3.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만지다”(하프토마이-ἅπτομαι) 이 말은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보통은 가볍게 터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요20:17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게 매달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은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셨던 단어입니다. 그리고 골 2:21에서는 바울이 사용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그런 맥락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요한 사도가 여기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악한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을 붙잡지 못한다.” 라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악한 자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매달리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껴안지도 못한다.” 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라.” 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앞의 구절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요한 우리가 거듭났음으로 사단의 세력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악한 세력은 늘 괴롭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붙잡히지 않습니다. 악한 사단은 우리를 좌절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수중에 넣지 못할 것입니다. 사단은 비록 우리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우리를 꾀어 죄를 범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다시 그에게 붙들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구속은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해방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을 붙잡고 품고 게십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결점과 연약함에 의해서 사단의 속임수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요한의 위대한 가르침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는 결코 우리를 붙잡지 못합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붙들지 못합니다.
요일5:19절은 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성도인 여러분과 저는 결코,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사단의 손아귀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습니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결론과 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속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십니다. 이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사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기를 준비하십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입니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죄와 맞서서 싸울 때마다 절망감 보다는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보호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적 자들보다 강하십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철저히 지키시며, 우리에게 항상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보호를 기뻐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졌던 토플레디(Toplady) 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나는 최고의 보호자를 모셨습니다!
(비록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영원토록 (나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변함없이 신실하게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통치와 명령하실 권세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분은 늘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영원한) 위안으로 나를 감싸십니다!
그분의 은총이 이슬처럼 내립니다!
그분은 기쁜 마음으로 (나를) 보호해 주십니다!
내 영혼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보호하십니다. 어떤 환란과 역경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서 전능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셔서 지키십니다. 불안한 마음과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사시는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의지할 곳 없는 이 땅에서 우리를 영원히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어느 날,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어느 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용서와 은혜의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신 저주의 십자가로 여셨습니다. 영원한 용서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주십니다. 오늘도 이 땅에 사는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을 향하여 우리 주님은 부리시고 계십니다. 오, 하나님! 삼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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