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4)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하나님

by 인천열린 2023. 4. 9.

엡 2장 4-7절(▶동영상)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하나님

 

 

“4.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들어가는 말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4번째 시간입니다. 특별히 부활절 감사예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셨는가? 이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도의 의도는 우리들이 생각하라 것입니다. (1) 왜 사도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말하는가? (2)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 중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신 일을 알고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1. 왜 기독교 안에서 방황하는가?

 

1.1. 사도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사도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듣고 생각해야 할 진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전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선언은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을 이 선언에 자신을 비춰서 생각해야 할 것으로 선언합니다. "허물(παράπτωμα 파랍토마)로 죽은 우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진리를 제시하셨는데, 그 진리의 길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길을 벗어나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비참하게 하나님을 떠나간 것입니다. (하마르티아 μαρτία)와 동격입니다. 이게 바로 "허물(παράπτωμα 파랍토마)"라는 용어의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죽은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사망, 즉 영원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상태요, 인간은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1.2. 사도가 의도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에게서 오늘 사도와 같은 관점으로 말하는 사람을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그리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하게 되었다.”라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했거나,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자신은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는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런 인식만으로는 기독교를 접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무엇을 한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에게나 나에게 무엇인가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또는 기독교 동아리에 소속된 것만으로,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무엇을 행한다고 할지라고 철저히 기독교의 진수를 맛보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여기서 진정한 기독교의 맛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오늘 사도가 말하는 내용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 이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진수를 맛보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도가 그것을 의도하고 여기에 이 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여기서 의도한 것을 알겠습니까?

 

 

1.3. 우리가 행하는 것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두고 생각하고, 그 행하신 일로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종교적인 활동을 우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행하신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증거 되고 있는 일들이 나에게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나에게 생명을 주셨는지? 아직도 이것을 알지 못하겠다면, 복음이 나에게 어떤 면에서 가려져 있고 왜 가려졌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엡 1:19절에서너희로 알게 되기를 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엡 1:20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엡 2:1절에서 (하나님)는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리심을 통해서 우리를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죽어 있는 우리를 살리셨는지를 말합니다. 사도가 말하고 있는 의도를 여기서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지금 행하고 있는 설교는 지금 사도가 말하는 방향과 초점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고정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1.4. 기독교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은 여기서 벗어나버립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서 곁길로 벗어나서 생각하고,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굳게 믿어버립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일들이나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행하신 일은 먼 옛날의 이야기, 관심의 밖에 생각할 필요가 없는 어두운 창고에 하나님의 행하신 복음을 가둬두고, 지금 자신이 생활하기 급급한 일들이나, 지금 돌아가는 세상의 일들이나, 자신의 취미와 취향에 어울리는 것들을 말하고, 그렇게 지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복음을 알고 생각하는 일에서는 철저히 떠나서 살아갑니다. 그런 습관에 빠져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오랫동안 철저히 떠나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주변에 있는 것들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출석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도 물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것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런 기독교의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자신을 만족시키고, 어떤 자부심을 갖습니다, 성경이 보는 관점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허송세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어떤 자부심을 갖거나, 또는 좀 더 좋은 교회를 출석하고, 좀 더 좋은 환경과 좀 더 좋은 교회 지도자를 만나서 활동을 잘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의 진수를 맛보거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은 곧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데 머물러 있음을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도 사단의 속임수라 생각합니다.

 

 

1.5.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무엇을 행한다거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들은 우리가 적절하게 그리고 더욱 세심하세 챙겨가야 할 일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우리의 어떤 헌신이나, 봉사, 그런 섬김도 챙겨갈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 이런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뇌하고, 그러면서 감사하고 찬양하며 회개하는 일로 우리의 인식을 사도의 관점의 방향으로 돌려세워야 합니다.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사회에서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며, 그런 중에서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과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가 여기서 의도하는 바입니다.

 

 

 

2. 그러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2.1.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라는 말씀인가?

 

인생은 모두 그리 길지 않습니다. 순식간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세월 동안에 우리는 허송세월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사도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라고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문화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를 말하면서, 자신이 교회에서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자신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데 그 초점을 맞추고는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기독교의 참된 진리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 안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셨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는 엡 1:20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을 말합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일은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아가는 데 초점을 두라는 것입니다. 갈수록 복음의 의미를 풍성하게 알고 누리고 감격하며, 하나님과 사귐을 풍성하게 누려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말씀과 기도의 풍성한 누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사도는 엡 2:5-6절에서 말을 이어갑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것은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2.2. 하나님은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이러 방식으로 기독교의 진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사는지는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은 아니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합니다.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복음에서 파생된 다양한 일들과 내가 갖춰야 할 태도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의 태도는 1) 1) 하나님께 대하여, 2) 이웃에 대하여 3)이 세상에 대하여 갖춰야 할 태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좋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맨날 복음만 생각해야 하나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복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복음은 단순히 몇 가지 글씨나 몇 마디 말의 표현으로 다뤄서 충분히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그런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줄기차게 복음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진리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단지 몇 글자로 단순히 반복해서 말하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우리에게 행하신 일로 나누어서 사도는 감격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인류 안에서 즉 율법 아래서, 죽음에 처하도록 하셨을까? 그리고 왜 그리스도는 죽음을 지나서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나? 즉 왜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까?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또 그 깊은 의미를 알아가는 데 우리의 노력과 힘씀이 요구됩니다. 거기서 깨달음과 뜨거운 감격, 그리고 우리 자신을 거기에 비춰서 깊은 고뇌와 아픔을 겪습니다. 그 십자가와 같은 거친 길을 지나서면 영광스러운 주님의 높아지신 일들이 나타납니다. 그런 모든 진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기독교 교리문답에서는 항상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행하셨는가? 이것이 본문에서 사도가 말하는 내용이요, 선언입니다.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당신의 독생자에게 행하신 일(예 1:19-20)과 우리에게 행하신 일(엡 2:5-6)로 구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3. 그리스도와 함께(연합시켜) 행하신 일들

 

"허물(παράπτωμα 파랍토마)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과거형으로 쓰인 이 말씀은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말하자면 우리는 아담과 함께 죽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아담과 함께 영원히 저주받은 자로서 아담과 함께 영원히 죽은 자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원수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아담과 함께 거기에 그 죽음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 눌려 있는 노예로 살았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사단에게 사로잡혀서 사단의 종노릇 하던 인생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거기서 불러내셔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던 그 비참한 지경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살리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살리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서 아담과 함께 있던 저주의 상태, 아담과 연합되어 있던 상태에서 우리를 구출하신 것입니다. 저주와 죽음의 품에서 축복과 생명의 품으로 살려내신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2.4 구체적으로 어떤 위치에로 우리를 건져내셨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서 우리를 일으켜서 세우셨습니다. 죽은 상태를 벗어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물론 육체의 부활은 그리스도에게서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시키셔서 우리를 살리셨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으로써 영적으로 부활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과 연합된 상태에서 영원한 저주와 사망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서 부활의 능력과 혜택을 영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먼 훗날에 육신의 부활이 있을 것을 믿고 있고, 그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이 영광스러운 상태를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함께 영원한 죽음에 사로잡혀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비록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 그리고 악한 세력의 유혹과 공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가운데서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살아갈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저주의 무덤과 같은 불신앙과 그 저주스러운 사단의 종노릇에서 일어났습니다. 온갖 악습과 이 세상의 풍습에서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도 들어 올려 짐으로써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죄를 다르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를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요 1;12).

 

 

결론과 적용

 

부활절 주일 감사예배에서 우리는 더 이상 먼 훗날 있을 육체적인 부활을 기대하는 막연한 상태로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상태를 우리고 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나에게 있어서 죽었고, 무엇이 나에게서 새롭게 살아났습니까?

 

나는 지금 누구와 연합된 사람입니까? 직도 아담과 연합된 상태의 저주스러운 일들에 발걸음을 담그고 있습니까? 아직도 아담과 함께 짓눌려 있던 옛사람의 악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힘들어하십니까?? 여전히 아담과 함께 연합되어 있던, 그 예 삶을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그리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스러운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둡고 칙칙한 사망의 권세 아래서 살던 삶은 어떤 삶이었습니까? 마치 어둡고 칙칙한 무덤 속에 안치된 썩은 시신과 같은 삶이 아니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으신 여러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힘을 바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신앙의 권위를 되찾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