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1장 1-2절 주전 20230430
(베드로후서 설교 01)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1-2)
들어가는 말
우리는 환란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몇 년 동안 시끄러웠습니다. 각 나라마다 권력자들은 국민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고, 극단적인 주장들이 난무한 시대를 지나야 만 하게 됐습니다. 전쟁은 이런 어려움을 달래주는 도구로 악용해서 수많은 적국의 백성들을 희생시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매우 고단한 상태에 놓였고, 갈수록 통제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사람들 간의 갈등이 극심해집니다. 이런 시기마다 세상은 크게 낙심하고,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세상은 더욱 도덕적 타락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런 때에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마저도 이 시험과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게 되면 온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최후에는 교회만이 소망이 있음을 사실대로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가?
1. 환란의 시대마다 최대적의 적은 “진리에 대한 불신”
1.1. 베드로가 서신을 보냈던 배경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 베드로가 갔을 때가 아마도 67-68년 경이었습니다.1차로 투옥되어 있던 때와 겹칩니다. 네로 황제가 가장 광분하던 때입니다. 기독교 교회가 가장 크게 핍박을 받던 시기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베드로는 2층집 창문으로 '칼리굴라 경기장'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입주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여러 기독교 신자들이 붙잡혀 와서 고문을 당하던 곳입니다. 심지어 맹수들에게 죽임을 당하던, 사형을 선고받은 그리스도인이 희생된 곳입니다.
유대교가 인류 역사에서 사실상 사라지게 된 사건이 70년 예루살렘의 파괴된 사건입니다. 유대나라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종말과 기독교의 새롭게 탄생했던 곳입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2-3년 전, 로마제국 전 지역에서 기독교가 가장 심각하게 핍박을 받던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 사도가 제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이것이 본 서신의 배경입니다. 베드로의 서신은 실루아노(벧전 5:12)에(벧전5:12) 의해서 대필하여 보낸 서신입니다. ‘실루아노’라는 사람은 바울과 함께 빌립보 감옥소에 투옥되었던 '실라'라는 인물입니다. 본 서신은 그의 대필로 흩어져 있는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의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세상의 권력에 의하여 핍박을 받던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서신입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유대교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정치세력과 결탁된 유대교 사람들에 의하여 교회는 지독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1.2. 혼란기에 침투하는 이단
유대교는 이미 예수님 지상생애 때부터 보여 왔던 것처럼, 정치권력과 결탁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온갖 미신과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지속적으로 괴롭혔습니다. 이제 사도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로마교회가 세워진 이곳에서도 유대교 이단과 헬라철학을 기반으로 한 거짓된 종교가 교회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당시 교회가 당한 어려움은 사소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과 어려움이 매우 심각하고 진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이 고난과 고통이 오늘날 우리와 어떻게 연관성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겉으로 보면 세상이 변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태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은 고통스럽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동일하게 베드로후서의 배경 속에 살던 사람들도 겪었던 것입니다.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그런 핍박과 함께 여러 시련을 겪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의식주'라는 문제도 만만치 않은 문제였습니다. 로마제국 자체마저도 북방의 야만족이 매일같이 침투하는 문제가 있었으니, 쉬지 않고 전쟁물자 공급을 위한 수고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 전체에 고달픈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세상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평민과 하층민들이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그러니 의식주의 문제는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데다가 교회적으로는 거짓 선생들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 베드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1.3. 혼란한 시대와 진리에 대한 불신
어려운 시대를 지날 때마다 교회 내부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결국 "불신"이라는 문제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의문이 들고, 이것은 시험으로 찾아드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틈타서 이단과 사이비가 창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되는 것은 "약속하신 것들이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하나님의 복음에서 말하던 모든 말들과 약속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의미에서도 힘을 잃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과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불신"과 "의문"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거짓 교사들이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교회는 항상 이런 패턴으로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환란과 함께 교회에 극심한 시험이 찾아드는데, 진리의 말씀에 대한 의문으로 찾아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도전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가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불신은 성도들 자신도 모르게 찾아들고, 교묘하게 성도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불신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찾아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피곤하고 아플 때, 누군가와 사별했을 때, 전쟁이 몰고 온 여러 가지 고통을 겪을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은 공허함으로 휘둘림을 당합니다. 진리에 대한 불신은 이런 식으로 마음에 신앙의 권태감과 진리에 대한 불신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황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외부세력들과 내부로부터 밀려오는 진리에 대한 불신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큰 낙심과 함께 커다란 실망을 겪습니다. 코로나19의 사태를 겪고 난 다음에 사람들의 마음과 성도들의 불신이 이런 방식으로 찾아드는 것입니다. 이런 때 사도는 어떻게 성도들을 위로하였는가? 우리의 관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2. 환란의 시기에 불신과 의심을 물리치는 원리
2.1. 회복의 유일한 길, 자신의 기반을 알고 확신하라!
이와 같은 환란의 시기에, 야고보 선생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언급했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시험에 들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험의 정체와 함께 하나님이 이끌고 가실 일을 제시합니다. 야고보서 1:2절입니다.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베드로 서신이 그런 상황에서 쓰였습니다. 사도는 그런 성도들을 복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망과 의심이 교차하는 성도들의 마음에서 큰 시험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신앙의 권태기가 급격하게 찾아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복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서신은 그런 확신 위에서 기록된 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분과 자신의 기반을 확실하게 아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 설교의 핵심입니다.
2.2. 우리의 신분과 기초는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정체와 우리의 반석을 알고 확신하는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맥락으로 사도는 벧후 1: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이것은 나무도 중대한 일입니다. 이런 때마다 사람들은 혼란과 권태기에 휩쓸리고 낙심하여 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태풍처럼 다가오는 불신과 의문에 밀려 가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갑자기 자신의 존재의 공허함과 권태감이 밀려와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신앙의 기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이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때마다 도덕적인 타락과 극심한 공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약과 도덕적 타락상을 보시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들이 사람들의 심리에 이미 있어 왔던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신앙의 기반을 잃는 사태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반석 위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반 위에 서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선언에 담긴 진리를 파악하고, 그 진리 위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회복의 방법을 내놓습니다. 베드로 사도에 의하면 우리에게 이미 있는, “신앙의 기반, 자신이 이미 서 있는 기초, 자신의 반석"” 알고, 이 진리를 유념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고, 자신이 서 있는 진리의 기반(기초)” 위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제시하는 원리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기에 우리의 신앙의 기반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는 구체적으로 되돌아가야 할 우리의 기반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2.3. 자신이 어떤 믿음 위에 있는지를 보라!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어떤 기반 위에 있느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진정한 기초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그 기반 위에 서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이런 원리는 시편의 시인들이 가졌던 원리입니다. 시편 18장 2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기 암시적 확신을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신앙의 원리입니다. 환란과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것이 대 원칙이요, 생명과 같은 원리입니다. 알고 그 진리 위에서 확신하는 것만이 유일한 회복의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시편 기자들이 "여호와를 자신의 반석이시오"라고" 고백한 것은 그런 맥락으로 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기반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모든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회복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신분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2.4.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으로 돌아갑시다.
사도가 여기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우리 믿음의 근거와 토대를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오직 동일한 믿음”만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가졌던 믿음이나, 이제 막 믿게 된 이방인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믿음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가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요, 사도들의 믿음도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믿는 믿음이 같습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은 모든 계층과 모든 모임과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소유하는 믿음입니다. 어디에 속해 있어도 똑같습니다. 이 믿음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믿음은 영광스러운 가운데 오직 하나의 입니다. 모든 믿음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사람의 차별을 폐지합니다. 복음은 온 세상을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만물은 하나님 앞에 존재해 있습니다. 오직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소티모스)”입니다.
결론과 적용
영원히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이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중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기본이 되는 내용입니다. 사도는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었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자신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로마제국의 핍박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복음의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퀴리오스, 주님이십니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혼란과 고통을 벗어나는 것, 영원히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기독교 믿음의 핵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모든 인생이 직면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여 하나님께 의롭게 여김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말처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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