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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후서 설교 04)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훈련, 절제와 인내

by 인천열린 2023. 5. 25.

벧후 1장 5-7절 주전20230528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훈련, 절제와 인내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8)
 
 
 

들어가는 말

 
오늘은 6절을 중심으로 우리의 믿음에 힘써서 다해야 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6절입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입니다. 오늘은 믿음에 절제와 인내입니다.
 
 
 

1. 일생에 가장 복된 것은 믿음이기에 보배로운 믿음

 

1.1. 왜 우리는 이 믿음을 보배롭다 하는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1)

 
베드로 사도에 따르면, 우리의 믿음은 우리들 스스로 쟁취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도들과 동일하게 받은 믿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를 힘입어”(1) 받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로 받은 믿음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우리의 공로도 이 은혜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과 결정에 따른 의()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생애에 가장 복된 것은 믿음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1.2. 우리의 믿음은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4)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이 믿음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방향도 없고 원칙도 없이)맹목적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라.”(4절)라고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가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 말은 자유가 없다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으나, 그리스도 밖의 썩어질 것들에 빠져서 방종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방종 하는 삶을 사는 것은 ‘보배로운 믿음’에 대한 모욕이며, 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망령된 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아주 명백한 길을 제시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소극적으로는 “썩어질 것들을 피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신성한 성품, 즉 하나님의 성품,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3. 그러기에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기 때문에 사도는 지금 그 믿음의 길에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①그 첫 번째가 이 믿음은 독특한 특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믿음에 덕이요, 덕에 지식”이 더해져야 보배로운 믿음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생각했었습니다.
 
오늘은 사도는 그것에 더하여 믿는 자의 내적인 기질을 갖춰야 하는데 어떤 기질이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썩어질 것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중단 없이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 6절에 수록된 각각의 요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곧 ② 믿는 자의 내적인 기질입니다. 믿는 자가 갖춘 지식에 절제가 더해져야 하고, 절제에는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훈련, 절제와 인내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6)

 
6절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에 “힘써 공급하라.”고 했던 6가지 중에서 제 6절에 언급된 절제와 인내가 언급되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의 내적인 기질”에 속합니다.
 
 
2.1. 믿음은 삶의 전반에 균형을 이뤄야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믿음에는 힘써 공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이었습니다. 이런 요소를 7절에서는 “힘써 더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믿음에는 균형을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기계적으로 믿음에 무엇을 더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 삶의 전반에서 역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전체적으로 온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각각의 요소들도 온전해야 하지만, 동시에 전체적으로도 균형을 이루어서 온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요소들을 충분히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덕을 충분히 공급”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덕에 충분한 지식”을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와 맥락으로 본문을 읽으면서 다음에 나오는 요소를 생각합시다.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은 너희 지식에, 또는 너희 지식 안에 절제를 충분히 공급하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너희의 그 절제에는 인내도 충분히 더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2.2. 지식에 절제(ἐγκράτεια)
 
6절에서 하나는 절제요, 다음은 인내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거듭났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속에는 또 다른 옛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충동과 욕망, 정욕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할지라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옛 사람과 새사람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인니라.”(5:17)
 
우리에게는 항상 죄악으로 이끌어 가려는 영혼의 적대자와 원수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언제든지 교만하게 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우쭐대는 순간 우리는 이처럼 마음속에 있는 정욕과 정열에 빠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는 항상 자기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며,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것들을 경계하고 절제하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들에 속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3:5)
 
이것은 우리가 결코 소홀이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이 믿음에 덕을 더하여 활발히 행해야 한다고 앞에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이런 육제의 옛사람에게 속한 것들이 우리 마음에서 갑자기 스스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대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절제와 훈련과 극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지체들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을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권하고 있는 말이 “절제”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것은 곧 절제입니다. 특히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할 것은 교만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지식이 죽은 지식 일뿐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남들 앞에서, 특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덕을 교회에 끼치지 못합니다. 지식을 가진 자는 방종의 기회로 삼기 쉽습니다. 지식 자체는 어긋나지 않았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를 향해서 자유롭게 행동함으로써 타인의 믿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바울도 이 부분을 경고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8:1)
 
 
2.3. 절제에 인내(ὑπομονή)
 
여기서 불신자에게 인내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거듭난 사람,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에게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인내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절제와 인내는 자기실현의 훈련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인내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바라는 신령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의 인내는 거듭난 신자에게 말하는 인내입니다.
 
인내, 그 의미는 잘 견디어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전쟁과 같은 삶입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이 투쟁하는 삶은 우리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투쟁하는 일은 외부에도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타인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고 견디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신앙고백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고백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되어 갖춰야 할 것은 오래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갑자기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낙심하고 주춤거림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세상에서 치욕이 받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참음으로 인내력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담대하고 활동적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래 참는 인내력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에서 인내하지 못하면 비웃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견디어야만 합니까?”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한 기업을 위해 견디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결론과 적용

 
지식에 절제를 힘써 더합시다. : 믿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이런 “육체”라는 옛사람에게 속한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갑자기 이런 것들이 스스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기대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절제와 훈련과 극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식에 절제”를 힘써 더해야 합니다. 믿음의 지식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우쭐댈 것이 아닙니다. 아는 만큼 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어린 영혼들을 위해서는 우리의 지식을 매우 조심스럽게 활용해야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정답을 가지고 형제자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절제에 인내를 힘써 더합시다. : 아무리 대단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고백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되어 갖춰야 할 것은 오래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갑자기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낙심하고 주춤거림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서 치욕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오래 참음으로 인내력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최후의 영광스러운 일들을 향해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사랑의 특징이요, 사도의 표증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래 참음을 훈련합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에 충분히 참여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절제하면 참아냅니까? 히브리서에서 오래 참는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마음이 요구됩니다. 그분의 도우심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절제에 인내를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겠다는 자신감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일이 신비롭게 일어납니다. 도움을 구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이 체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실제적인 삶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훈련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곧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를 감격적으로 함께 누리가 있습니다. 마음의 은혜가 그분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히12: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